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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579] 태권도는 왜 '기합(氣合)'을 넣을까

2021-12-14 07:04

태권도는 기합을 넣으며 각종 기본 동작을 펼친다. 사진은 태권도 시범행사 모습.
태권도는 기합을 넣으며 각종 기본 동작을 펼친다. 사진은 태권도 시범행사 모습.
예전 할리우드 액션 스타 브루스 리(이소룡)하면 떠오르는 게 괴성이 섞인 기합소리였다. 브루스 리가 영화에서 보여준 절도있는 동작과 괴성에 가까운 기합은 70-80세대에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같았다. 당시 학교나 체육관 등에서 그를 흉내 내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태권도도 기합과 함께 기본 동작을 시작한다. ‘차렷-경례’에 이은 준비 동작은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발차기, 주먹 지르기 등이 이어진다.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곳이든 태권도 도장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합이라는 말은 한자어이다. 기운을 의미하는 ‘기운 기(氣)자와 한 군데로 모이게 한다는 ’합할 합(合)‘자가 합성된 말이다. 뜻은 기운을 한 곳으로 집중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한자어 사전에 따르면 ’기(氣)‘자는 ‘기운’이나 ‘기세’, ‘날씨’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로 ‘기운 기(气)’자와 ‘쌀 미(米)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기(氣)‘자는 미(米)자가 없는 기(气)氣자로 먼저 쓰였었다. 기(气)气자는 하늘에 감도는 공기의 흐름이나 구름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획을 세 번 그린 것으로 하늘의 기운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숫자 ‘석 삼(三)’자와 혼동되어 위아래의 획을 구부린 형태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쌀 미(米)자가 더해져 밥을 지을 때 나는 ‘수증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气기(气)자와 마찬가지로 ‘기운’이나 ‘기세’, ‘날씨’와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합(合)’자는 ‘합하다’나 ‘모으다’, ‘적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합(合)자는 亼‘삼합 집(亼)’자와 ‘입 구(口)’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합(合)자는 구(口)口 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입’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합(合)자의 갑골문을 보면 뚜껑이 있는 찬합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합(合)자는 뚜껑과 그릇이 함께 결합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합하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한글학회가 발행한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기합은 특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정신과 힘의 집중, 우리말로는 ‘얼차려’라는 뜻이다. 특히 기합술은 무예에서 힘과 정신을 모으기 위해 소리를 지르면서 보통 이상의 힘을 내는 술법을 말한다.

기합이라는 말은 조선시대때부터 써왔던 말이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일본 유도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태권도는 1950년대 군에서 시작했던 초창기 때부터 고단자들이나 수련자들이 정신을 집중하거나 기를 모으기 위해 기합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권도에서는 격파를 할 때 아주 크게 기합 소리를 낸다. 송판, 기와장, 벽돌 등을 깰 때 시선을 집중하여 기합으로 힘을 모은다. 충돌하는 순간에 온 몸이 긴장하고 그 순간 힘을 집중해 타격력을 증가시킨다. 기합은 육체의 모든 근육을 동시에 수축시키고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전기적 방법으로 측정하는 ‘근전도 검사’에서 기합이 없을 때보다 기합이 있을 때 훨씬 더 힘을 발휘한다. 육상 투포한 선수들이 기합을 넣으면 근력이 11퍼센트 이상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합을 넣을 때 힘이 나오는 이유는 몸속 생리적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큰 소리로 신경계가 먼저 흥분하고 뇌속 ‘운동 뉴런’이 자극을 받아 신체의 모든 근육에 더 많은 자극을 줘 많은 근섬유를 움직이게 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솟구친다는 것이다.

태권도에서 겨루기를 할 때 기합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방어를 하는 데 있어서 선점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심리적인 기능도 갖고있다고 한다. 기합을 통해 기선을 제압해 상대의 기를 뺴앗고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는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합은 예전 군대나 학교 따위의 단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 잘못한 사람을 단련한다는 뜻에서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학생 때나 군대생활에서 ‘기합을 받는다’는 말을 쓸 때는 매질이나 폭력 등을 당했던 아픈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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