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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541] 배구에서 왜 스크린잉(Screening)이라는 말을 쓸까

2021-11-02 10:24

스크린잉은 서브를 할 때 상대가 블로킹으로 차단하는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사진은 우리카드 알렉스가 지난 달 24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점프서브를 넣는 모습. [연합뉴스]
스크린잉은 서브를 할 때 상대가 블로킹으로 차단하는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사진은 우리카드 알렉스가 지난 달 24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점프서브를 넣는 모습. [연합뉴스]
똑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든, 한국어든 쓰는 용도에 따라 같은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다. 언어학적으로 이런 단어들을 다의어(多義語·Polysemy)라고 부른다. 스포츠 용어 중 하나인 스크린(Screen)도 그런 말에 속한다. 스크린은 야구, 농구, 배구에서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다.

영어 ‘Screen’이라는 말은 어원이 앵글로 프랑스어 ‘Escren’, 중세 네덜란드어 ‘Scherm’에서 유래했으며, 800-1100년 남부 독일어로 알려진 고대 고지 독일어(Old High German) ‘Skirm’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미국용어사전은 설명한다. 영어에서는 14세기부터 방호물, 덮개 등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스크린을 스포츠 용어로 처음 사용한 것은 야구였다. 미국 딕슨 야구사전에 따르면 1879년 타자가 친 파울볼로부터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북동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매서 파크에 관중 보호용 스크린을 처음으로 설치했다. 당시 스크린은 네트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야구에서 스크린이라는 말은 볼과 야수(Fielder) 사이에서 끼어드는 주자를 뜻하기도 했다.

농구에서 스크린은 공격자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진로 방해동작이다. 상대 수비수와 심한 신체접촉 없이 상대가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방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크린은 드리블, 패스, 슛 만큼이나 중요한 플레이다. 스크린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성패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이라는 말이 농구에서 언제, 어떻게 도입돼 사용했는 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야구에서 비슷한 개념으로 쓰인 것을 들여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농구 용어 스크린이 야구 용어 스크린과 의미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농구부터 스크린이라는 용어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되다가 농구보다 먼저 시작한 야구 용어를 빌려와 본격적으로 쓰게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이유이다. (본 코너 407회 ‘ 왜 스크린(Screen)이라 말할까’ 참조)

배구에서 스크린은 진행형 동사인 ‘ing’를 붙여 상대가 서브를 할 때 방해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뜻한다. 날아오는 서브를 고의적인 의도를 갖고 블로킹으로 막으면 반칙이 선언된다. 정상적인 플레이를 방해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예전 언더핸드 서브를 많이 구사할 때 순간적으로 블로킹으로 막다가 파울 판정을 받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 스파이커들이 공이 네트를 미처 넘어오기전 도약해 스파이크를 하기위해 달려들 수 있다. 이때 네트를 건드리면 당연히 파울이지만 미처 볼이 네트를 넘기전에 상대 네트 너머로 공격을 하면 오버 더 네트(일명 오버 네트) 파울이 선언된다. (본 코너 525회 ‘오버네트(Overnet)의 정식 명칭은 오버 더 네트(Over The Net)이다’ 참조) 고의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상대방에게 발을 구르는 것은 스포츠맨답지 않게 행위로 분류돼 반칙에 해당한다.

배구에서 스크린잉은 1935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895년 레크리에이션 스포츠로 미국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 YMCA에서 윌리엄 모건이 창안해 전파되기 시작한 배구는 규정의 변천을 거듭하며 재미있고 흥미로운 스포츠로 발전했다. 스크린잉이 만들어질 때는 초창기 배구를 거쳐 엘리트종목으로 자리잡기 위해 경기규칙을 본격적으로 다듬던 무렵이었다. 경기규칙은 모두가 평등하게 즐기며 공정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스크린잉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제정됐던 것이다.

스크린잉이 생기기 이전에도 서브와 네트와 관련한 파울 규정이 만들어졌다. 서브가 네트를 건드린 경우에는 상대 코트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 실패한 것으로 판정했으며 경기 도중 선수가 네트와 접촉한 경우 이를 파울로 판정했다. 서브와 네트에 대한 규칙이 강화되면서 서브와 관련한 규정으로 생긴 것이 스크린잉이다. 선수들의 신장이 점차 커지면서 선수들이 네트 부근에서 상대 서브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배구에서 스크린잉은 시대적 변화가 낳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중 벌어지는 각종 행위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개념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생긴 용어인 것이다. 비록 다른 종목에선 의미가 다르지만 말의 분화가 이뤄지면서 배구 용어로 널리 쓰이게 됐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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