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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100년](68)올림픽 참가를 위한 염원⑤브런디지 컬렉션(중)IOC 가입을 위한 일련의 과정들

2021-04-06 10:33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체육인들이 앞장서 올림픽을 통해 신생독립국 탄생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고 할 수 있다. 체육인들이 브런디지와의 주고 받은 서신과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그 과정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경무
전경무
IOC 가입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 전경무는 시카고에 있는 브런디지를 만나기 위해 첫 편지를 띄웠다. 1946년 말이다.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올해 구성된 KOC를 소개하는 편지를 가져왔으며 이 편지에 동봉한다. 우리 선수단이 올림픽에 참가하는데 필요한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만나고 싶다. 금년이 가기 전에 뉴욕에 올 일이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혹시 내가 시카고로 가야 한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전경무가 함께 보낸 KOC 소개 편지는 런던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인 유억겸이 쓴 것이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조선체육회 대표들은 1946년 7월 15일 런던올림픽대책위원회를 서울에서 조직하였다. 우리는 국제스포츠와 올림픽에 참가하기를 열망하며 만장일치로 부위원장인 전경무에게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대외협력과 스포츠 외교의 전권을 부여했다. 미국 국민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독립시키려는 노력처럼 미국올림픽위원회가 우리 선수들을 양성하는데 지원해주기를 요청한다.’

전경무는 12월 3일 시카고에서 브런디지를 만났다. 이 만남에서 브런디지가 조선의 올림픽 참가를 적극 돕겠다고 말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향신문 1946년 12월 22일 2면
경향신문 1946년 12월 22일 2면
경항신문은 ‘조선도 차회(次回) 올림픽에 참가, 재미대책위 부위원장 전경무씨의 낭보’라는 제목과 함께 이렇게 보도했다.

"조선이 오는 1948년도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참가되느냐, 아니 되느냐에 대하여서는 일반 경기계는 물론 동호자들 사이에서도 궁금하게 생각하는 문제인데 지난 9월에 도미한 제14회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전경무씨로부터 지난 12월 5일 시카고에서 현 문교부장이며 올림픽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유억겸 씨에게 발한 전보에 의하면 조선도 오는 런던올림픽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미국올림픽위원회 회장인 부런데지 씨와의 확약이 있었다는 랑보가 들어와 조선 체육계를 기쁘게 하고 있는데 그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일 부란데지 씨와 회담. 미국올림픽위원회의 조력 확약. 아즉도 각 방면으로 예비적 활동이 필요하나 조선의 런던대회 참가는 유망하다고 확신한다."
(경향신문 12월 22일자)

조선일보 1946년 12월 24일 4면
조선일보 1946년 12월 24일 4면
조선일보도 12월 24일 ‘올림픽에 우리도 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948년 론돈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대회에 우리 조선도 참가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서 19일 도착하였다. 이는 지난 구월 초에 도미한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전경무씨가 그 후 각 방면에 맹렬한 활악을 한 결과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미국올림픽위원회 회장인 부런데지 씨로부터 조선의 참가를 적극 후원해주겠다는 확약을 얻고 12월 5일 다음과 같은 전보를 올림픽대책위원장 유억겸 씨에게 전해왔다. …"

전경무는 브런디지 뿐 아니라 다른 IOC 주요 인사들에게도 편지를 띄운다. 다음은 전경무가 브런디지를 만난 후인 1946년 12월 27일 스웨덴의 지그프리드 에드스트롬 IOC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다.

"…브런디지와 면담했고, 한국의 IOC 가입 가능성을 문의하고자 한다. 조선에는 아마추어 단체들이 광복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 단체들은 젊은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기능과 아마추어리즘을 보존하고 있다. 1945년 11월 18일 현재 21개 경기단체가 구성되어 조선체육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 경기단체들은 국제경기단체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대책위원회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대비해 1946년 7월 15일 임원을 선출했다.

우리는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기를 원한다. 정치상황은 조만간 독립국으로 될 국제적 합의가 있다. 올림픽에 참여하고 싶은 당위성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마라톤 2명과 복싱 1명 등 3명이 출전했다. 2. 일제강점기에 조선과 일본의 국제경기가 있었고 국가 별로 따로 경기가 있었다. 3. 극동아시아경기에는 조선이 단독출전하였고 특히 축구와 야구가 그러했다. 4. 조선 선수는 국제적 수준이다. 5. 이제 독립국으로 참가하고 싶다."


이 편지를 받은 에드스트롬은 다음해 1월 답신을 보냈다.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5개 이상의 국제경기연맹에 가입하기만 하면 NOC 구성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5개 종목 및 이 중 3개 이상 가입’이라는 조건이 들어있다. 당초 우리 체육인들이 알고 있던 내용과 달랐다.

"…런던올림픽 참가를 환영한다. 그러나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정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종목별 경기단체들이 국제경기연맹에 가입해야 하며 특히 다음 종목들이 그러하다. 육상 수영 축구 레슬링 농구의 5개 종목이다. 귀하의 국가가 이 5개 국제경기연맹 중 3개의 회원국이라면 NOC가 성립되며 1947년 6월 15일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인준될 것이다. 시간이 없지만 많은 일이 전신으로 가능할 것이고 귀하 자신이 스톡홀름에 와서 설명할 수도 있다.… "

에드스트롬은 이 답신에 국제경기연맹의 명칭과 주소를 명기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nternational Amateur Athletic Federation) 국제수영연맹(International Swimming Federation) 국제축구연맹(International Football federation) 국제아마추어레슬링연맹(International Amateur Wrestling Federation) 국제아마추어농구연맹(International Amateur Basketball Federation)이었다.

전경무는 이에 따라 레슬링 육상 농구 축구 체조 수영의 국제경기연맹에 가입신청서를 보내고 이를 에드스트롬과 브런디지에게도 편지로 알렸다. 그리고 5월 15일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축구연맹 국제레슬링연맹에 구비서류와 신청비용을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맹 가입은 순탄치 않았다.

이는 IOC 총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5월 18일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국제경기연맹 가입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시간이 부족하다. 6월 15일 이전까지 신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IOC로부터 권고 받아 알고 있지만 그 때까지 국제경기연맹의 회의 일정이 없다. 때문에 아직 국제경기단체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승인 과정에 있고 6월 15일 이전에 승인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시간을 맞추지 못할지 몰라 불안하다. 그래서 IOC 가입에 도움이 되고자 지금까지 우리가 기울인 노력의 과정을 제출한다.

국제경기연맹 가입신청서 제출 날짜
1947년 1월 23일 국제수영연맹
1947년 2월 13일 국제레슬링연맹 국제축구연맹 국제농구연맹 국제체조연맹 국제육상연맹
1947년 4월 19일 국제빙상연맹

가입신청서에 대한 답변
-1947. 1. 29 국제수영연맹 : 회람을 통해 회원국들이 인지했으며 9월 몬테카를로 회의에서 제안될 것임.
-1947. 2. 18. 국제레슬링연맹 : 회장에 의하면 신청서는 프라하에서 4월 11일 결정될 것임.
-1947. 2. 20 국제육상경기연맹 : 6월 런던총회에서 신청서가 심사될 것임.
-1947. 3. 5 국제축구연맹 : 가입신청에 감사드림.
-1947. 3. 12 국제농구연맹 : 신청에 감사하며 결정은 1948년 런던에서 결정됨.

그리고 이에 대응해 정관과 규칙, 회비 납부를 다음과 같이 실행함
-1947년 5월 5일 국제육상경기연맹
-1947년 5월 5일 국제레슬링연맹
-1947년 5월 10일 국제축구연맹 "

이 편지에 따르면 IOC 총회가 열리기 한 달 전까지도 개별 종목 경기단체가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레슬링만 가입심사가 완료된 상태였다. 같은 날 전경무는 브런디지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 역시 국제경기연맹 가입요건을 채우지 못한 불안감이 짙게 배어있다.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를 동봉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울인 노력을 썼지만 사실 매우 두렵다. IOC 가입에 필요한 국제경기단체 가입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IOC 가입신청에 특별한 배려를 요청하며 런던에서 꼭 경기할 수 있게 해주기 바란다."

전경무는 이어 조선레슬링연맹의 국제레슬링연맹 가입이 4월 11일 확정됐다는 전보를 브런디지에게 보내는데 이는 국제경기연맹 가입을 IOC에 알린 첫 케이스다. 이 전보는 IOC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한 전경무의 마지막 문서였다. 그는 5월 29일 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기존 기록에 따르면 런던올림픽대책위원회는 육상 축구 권투 역도 농구 자전거 등 6개 단체의 국제경기연맹 가입절차를 밟은 것으로 되어 있다. 육상과 자전거는 올림픽대책위원회 구성 전인 1945년에 이미 국제연맹에 가입했고 권투는 1946년, 농구와 역도는 1947년, 축구는 1948년 가입을 마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경무의 편지에서 보듯 IOC 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우리나라는 국제경기연맹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수영 레슬링 축구 농구 체조 육상 빙상 등 7개 종목에 가입신청을 했지만 이 가운데 총회 전에 가입이 확정된 종목은 레슬링과 총회 직전 런던에서 이원순의 활약으로 가입한 육상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목별 국제연맹의 총회 일정을 감안할 때 나머지 종목들은 가입이 됐더라도 모두 IOC 총회 이후일 수밖에 없었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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