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57)이길용 기자의 일장기 말소 의거③이길용 체육기자상으로 정신 기려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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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12-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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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체육기자의 밤 행사에서 제30회 이길용 기자상을 수상한 문화일보 이준호 부장(가운데)과 이길용 기자의 영식인 이태영 한국체육언론인회 고문(왼쪽 2번째)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한국전쟁 중에 북한으로 납북되고 소식 끊겨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말소한 대의거의 주인공인 이길용 기자는 1936년 10월 4일 40일만에 석방되었으나 일제하의 언론계에서는 영구추방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1945년 광복이 되기 전까지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혀 조그마한 행동에도 4차례나 더 투옥되는 수모를 당했다. 조기회를 결성한 것이 조선을 일으키려는 음모가 되면서 감옥에 가야했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검되는가 하면 반일 언동을 했다 하여 가택수색을 당하고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6차례 옥고로 이길용을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 47세가 된 이길용은 그토록 기다리던 광복을 맞았다. 그는 한민당 창당과 함께 조직부 차장이 되고 동아일보 복간과 더불어 이듬해에는 사업부 차장으로 복직되었다.

그는 미 군정 아래 비상국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고 1948년 정부 수립 전후해 서울시 고문, 배재중학 동창회 부회장, 이화여대 재단이사, 민국당 중앙당 상임위원 등 요직을 맡기도 했다.

광복이 된 조선체육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대한체육회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1949년 10월 15일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제30주년 기념식에서는 유일하게 공로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1950년 여름 납북된 뒤 완전히 소식이 끊겼다. 일제에 맞서 항일 기자정신의 상징이 된 ‘기자 이길용’은 1991년 8월 15일 광복 45주년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돼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광복이 된 뒤 일제강점기 조선체육사 정리에 나섰으나 이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납북이 되고 만 것이 아쉬웠다. 그나마 납북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정리한 기록과 취재 과정에서 모아 놓은 방대한 자료를 김창문이 ‘한국운동경기 총람’이란 부제 아래 ‘체육대감’을 연합신문사 발간으로 세상에 내놓아 빛을 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89년 7월 16일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일장기 말소 의거로 조선의 민족의 기상을 대변한 기자 이길용의 기자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이길용 기자상’을 제정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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