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100년](47)마라톤이야기⑧자바라 세계기록 5분22초 단축해 일본을 경악시킨 '마라톤'왕 등장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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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11-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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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최고기록을 수립을 보도한 1935년 4월 23일자 조선중앙일보(왼쪽)와 매일신보 기사
조선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의 마라톤 기록 경쟁은 1933년을 끝으로 막이 내렸다.

손기정은 육상부 선배인 부잣집 아들 김봉수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숙식을 해결하며 양정고보를 그대로 다녔다.

하지만 남승룡은 고향 순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학비를 조달받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승룡은 학비 조달이 어려워 “일본에 가면 고학을 하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일본으로 건너가 우유배달,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비를 마련해 1934년 메이지대학 전문부에 입학했다.

이런 가운데 1934년은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이 끝난 지 2년, 그리고 베를린올림픽이 2년 앞으로 다가 오면서 마라톤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남승룡이 일본으로 떠나간 뒤 김은배의 뒤를 이을 마라톤 대표 주자로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손기정은 조선체육회 주최 제2회 풀마라톤대회(1934년 4월 22일)에서 2시간24분51초, 제10회 조선신궁대회(1934년 10월 17일)에서 2시간32분19초8로 2개 대회에서 우승, 조선에서 더 이상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는지 모른다.

해가 바뀐 1935년 3월 21일 일본마라톤연맹이 마라톤 거리에 대한 시비를 의식해 육상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메이지신궁경기장 순회 마라톤 코스를 새로 만들어 전국마라톤대회를 주최했다. 이 대회에 손기정을 초청했다. 손기정이 조선에서 세운 기록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일본이 직접 일본에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의식한 손기정은 만만치 않은 일본 내 경쟁자들을 물리쳐 올림픽 대표 가능성을 확인하는 한편 일본 콧대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날씨가 음산해 트레이닝복에 장갑까지 끼고 출전한 손기정은 초반부터 선두에 나서 일본 선수들을 압도하며 1위로 골인했다. 그 기록이 2시간26분14.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의 자바라가 세운 2시간31분36초를 무려 5분22초나 단축하는 대기록이었다. 이에 일본육상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아일보는 3월 23일 자 1면 첫머리에 ‘세계 최고 마라톤 기록 조선 스포츠계의 쾌사’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싣고 “스포츠는 우리에게 체력 훈련을 주려니와 또한 책임감을 양성함으로써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위대한 영향을 우리에게 미친다”며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이겨 온 세계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고 우리를 존경하게 하자”고 설파했다.

그리고 손기정을 아테네에 승전보를 알려 마라톤의 기원이 된 ‘필리피데스’를 빗대 ‘조선의 필리피데스’로, 매일신보에서는 ‘마라손' 왕 손기정’으로 칭송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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