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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100년](46)마라톤이야기⑦권태하 편지받고 중장거리에서 마라톤으로 바꾼 손기정

2020-11-10 08:00

1933년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제3회 경성~망우리 단축마라톤대회 출발 모습.  손기정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33년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제3회 경성~망우리 단축마라톤대회 출발 모습. 손기정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손기정, 권태하의 편지받고 중·장거리에서 마라톤으로
손기정은 어느 날 권태하의 편지를 받았다. 권태하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끝난 뒤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그대로 남았다.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체류였다. 그러나 그는 자유스러운 미국에서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라톤에 누구보다 뛰어난 재질이 있음을 알아 본 권태하가 손기정에게 마라톤을 시작할 것을 권유하는 편지였다.

“손기정 군!
나는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실패했네. 이제 다시 시작하려니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나는 손군과 함께 연습하면서 손군이 가진 뛰어난 마라톤 소질을 보았네. 손군이라면 틀림없이 세계 마라톤을 제패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어떤가. 이제 정식 마라톤을 시작하게. 그래서 꼭 세계를 제패해서 저 일본 사람들의 콧대를 눌러 주게.”<스포츠 영웅 불멸의 손기정 중에서, 대한체육회>

권태하는 이 편지에서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체력안배 실패와 코치 겸 선수로 출전한 츠다가 자기들이 우승하고자 현지답사도 가뭄도 콩 나듯이 해주고 심지어 김은배에게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을 강요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손기정이나 남승룡의 기량이면 충분히 올림픽에서 우승을 노려볼 수 있으니 달리고 또 달려서 왜놈들, 아니, 나아가서 세계인들에게 모조리 이겨서 우리 조선의 힘을 널리 알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권태하는 이 편지를 통해 왜 올림픽에 나가야 하는지, 왜 일본의 콧대를 꺾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 편지는 손기정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손기정은 마라톤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장거리에 전념했다. 학교에서도 역전경주에 치중해 중거리 주자가 필요했다. 5000m와 10000m 이외에 1500m, 800m뿐만 아니라 학교 대항 릴레이에 동원돼 400m도 뛰었다.

아마도 권태하의 이 편지가 아니었다면 손기정은 중·장거리 선수로 남아 역전경주에 뛰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최종 예선전 실패로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손기정은 권태하의 편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완전치는 않지만 이 해 가을에 접어들면서 손기정은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9월 4일 경성운동장에서 열린 전 경성과 전 만철(全 滿鐵) 대항전에서 5000m에서 1위를 한데 이어 9월 23일 연희전문 주최 제10회 전조선중등학교육상경기대회 1500m 1위(4분28초2), 8마일 단축마라톤에서는 남승룡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첫 도전한 마라톤에서 2시간30분벽 돌파
손기정은 1933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첫무대가 3월 21일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3회 경성~망우리를 왕복하는 15마일 단축마라톤이었다. 물론 손기정은 양정고보에 입학하기 직전인 제2회 대회에도 출전해 2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는 중·장거리에 집중하다 양념으로 마라톤에 출전하는 정도였을 뿐이었고 실제로 마라톤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35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 경기서 손기정은 1시간24분03초2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남승룡(3위·1시간26분46초1)을 3위로 밀어냈다. 그리고 10월 17일 제9회 조선신궁경기대회 마라톤에서는 손기정은 처음으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성운동장을 반 바퀴 돌고 출발해 동대문~종로를 지나 경수가도 안양을 왕복하는 42.195㎞(26과 4분의1마일) 풀코스 마라톤에서 마치 중장거리 주자가 뛰는 것처럼 달렸다. 처음부터 이렇게 스피드를 내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했지만 손기정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2시간29분34초로 1위, 남승룡은 2시간31분36초로 2위. 모두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의 자바라가 수립한 2시간31분36초를 뛰어넘는 세계신기록이었다.

거리도 정확하고 계시도 제대로 되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록이다. 그럼에도 세계기록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코스 중간에 도로 보수공사로 제 코스를 뛰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선신궁경기이기는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경기인데다 조선인이 신기록을 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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