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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법정' 정려원이 느낀 드라마 대본의 반가운 변화

[노컷 인터뷰] '마녀의 법정' 마이듬 역 배우 정려원 ②

2017-12-24 00:55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마이듬 역을 맡은 배우 정려원 (사진=키이스트 제공)
지난달 28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마이듬 역을 맡은 배우 정려원 (사진=키이스트 제공)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정려원의 '마녀의 법정' 종영 기념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매번 한 시간 정도를 수차례 이어 말해야 하는 고단한 일정에도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마 올해 가장 '선명'하고 '대체 불가능'한 여성 캐릭터였을 마이듬을 맡은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내 안에 들어온 마이듬의 모습이 있는지, 여성을 중심에 둔 드라마가 유독 많았던 올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등.

무엇이든 시원스레 척척 답하는 그의 적극성 덕분에 인터뷰는 즐겁게 진행되었다. 10년 넘게 연기해 온 시간이 쌓여 온 한 배우의 연기관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어서 더 뜻깊은 자리였다.

(노컷 인터뷰 ① 여성아동범죄 전담 검사 역 맡은 후 정려원이 배운 것들)

일문일답 이어서.

▶ 캐릭터 구축할 때 포스트잇을 활용한다고 들었다.

의학 드라마('메디컬탑팀') 할 때 생긴 습관이다. 쪽대본이 나와서 (현장이) 빨리 돌아갈 때 그때는 진짜 필요하다. 이듬이는 대사를 받아도 소화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책으로 봤을 때부터. 그런데 입에 붙어야 되지 않나. 얘(마이듬)는 프로고. 찬장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 보고 이걸 다 외워야 컵 꺼내서 물 마실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설정을 했었다. 메모는 원래 자주 하는 성격인데 전문직 드라마 하면서 더 습관이 붙었다. ('풍선껌') 행아 역일 때도 그랬고.

▶ 마이듬 패션, 마이듬 헤어 등 외적인 부분도 화제를 모았다.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오버사이즈 입자고 했다. 핏 되는 건 너무 신경 쓴 느낌이라고 해서. 힐 신으면 멋스러운 느낌이라 단화를 신었다. 기죽지 않는다, 나도 잘 뛸 수 있어 이런 걸 더 잘 보여줬다고 본다. 치마 입었다면 그런 제스처나 걸음걸이를 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마녀의 법정' 이전에 2년 정도 쉬었다. 이유가 궁금하다. 혹시 작품이 안 들어왔나.

네. (웃음) 영화는 중간에 찍긴 했다. (드라마 대본) 들어온 게 하나 있었는데 장르물이었고 속사포 대사가 엄청 많았다. '풍선껌' 끝나고 쉬는데 요새 SNS도 그렇고 시대가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옛날에는 잠깐 쉬고 올라타도 아무렇지 않다 생각했는데 (이 흐름에) 타면 제가 튕겨져 나올 것 같다, 무섭겠다 해서 거절했다. 근데 이듬이가 들어왔을 때는 내가 이걸 안 하면 나중에는 빨리 돌아가서 탈 엄두도 못 낼 때 (대본이) 들어오겠구나 싶었다. 전의 것(작품)을 안 했으니 이건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장르물이 (연달아) 들어오는 건 (지금이) 이걸 할 시간이라는 거였다. 좋지만 두려운 마음이었다.

(사진=정려원 인스타그램)
(사진=정려원 인스타그램)
▶ 작품 선택을 할 때 주변에 도움말을 구하는 편인지.

주위에선 들어오면 다 하라고 해요. 저는 어느 순간 이건 하고 이건 안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여러 개의 대본을) 고르는 것보단, 들어왔는데 해야 될지 안해야 될지가 정할 때가 더 많다.

▶ 어떤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나.

저한테 매력적인 캐릭터, 제가 배워야 하는 캐릭터, 제가 공감하는 인물. 저는 수동적인 여자 역할 거의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 제가 뽑은 역할은 추리닝(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화 신는 역할이었다. 힐 신고 꾸민 건 (샐러리맨) 초한지밖에 없었고 다른 것들은 단화 내지는 운동화에 추리닝이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그걸 좋아했다. (그 차림이 제가 맡았던) 배역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선인 것 같다. 전 발이 편해야 연기가 훨씬 쉬운 편이다.

▶ 그동안 맡았던 역할을 보면 자기 색과 방향이 분명한, 강단 있는 캐릭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역할이 자주 들어오는 건지, 본인이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메디컬탑팀' 들어왔을 땐 다른 비교할 대본이 없었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계속 고민하다 '못할 것 같은데'와 '그래도 의드(의학 드라마)는 한 번 해 봐야 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이러다 고르게 됐다. '초한지' 여치 역은 처음에 '이런 여자가 나온다고? 이게 가능하다고?' 했다. 욕을 하는 것이지 않았나. 드라마에서 욕하는 게 가능하지 않았던 것 아시죠? (웃음) '초한지' 때문에 드라마에 삐 처리가 나왔다고 한다. 대본에는 그냥 삐리리라고만 나와 있어서 그때 감독님께 물어보니 배우 하기 나름이라고 하셨다. 고민하다가 트위터에서 공모한 적도 있다. 신선한 욕 좀 알려달라고. 시베리안 허스키, 조카 삼색 크레파스, 오징어 젓갈, 수박 씨 발라먹는… 등등. (거기서 나온) 주중 베스트가 대사가 됐다.

▶ 주체적인 역할을 꾸준히 맡은 걸 보니 그동안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준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구 계장 역 맡았던 윤경호 오빠가 '려원 씨는 되게 좋겠다'고 했다. 대본만 보면 되게 기분 나쁜 이듬이 대사도 려원 씨가 연기하는 걸 보면 기분 하나도 안 나빠요, 라고 하셨다. 이건 감사해야 되는 것, 복이라는 걸 알았다.

▶ 올해는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된 드라마가 유독 많았다. 대본을 받아보면서 어떤 변화를 느끼는 게 있는지.

네! '힘쎈여자 도봉순' 봤을 때부터 저는 보면서 통쾌하고 반가웠거든요. 박보영 씨 같이 그렇게 여릴 거 같은 분이 완전 반대 성향의 그런 역할을 맡는다는 게 너무 신선하고 반가웠어요. (김)선아 언니랑 김희선 선배님이 하신 '품위 있는 그녀' 보고도 '우와, 이런 게 계속될 수 있을까' 했다. 같은 작가님이 쓰신 것이지 않나. 이분의 성향일까, 아니면 이 시대의 무얼까 걱정을 했다가 마이듬 역이 들어온 걸 보고 '이건 시대다! 해 줘야 된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정려원이 출연해 온 작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 '샐러리맨 초한지', '풍선껌', '메디컬탑팀' (사진=각 방송 캡처)
그동안 정려원이 출연해 온 작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 '샐러리맨 초한지', '풍선껌', '메디컬탑팀' (사진=각 방송 캡처)
▶ 작품 선택 기준은.

사실 잘하는 것만 하지는 않았다. 장르는 엄청나게 많이 도전했다. 두려운 것을 극복하면 자산이 되는구나 하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예전에 의드할 때 피 같은 걸 잘 못 봤다. 소 눈 해부하다가 기절한 적도 있었다. 그것(두려움)을 깨 보는 게 꿈이었다. 그레이 아나토미를 볼 때도 수술 장면은 다 피하고 봤는데 결국 그 산을 넘었다. 두려움은, 죽지 않고 이겨내면 성장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이 들었다.

▶ 얼마 전 발매된 엄정화 신곡에 내레이션을 했던데.

쉴 때 호주에서 집 벽 칠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는 한국에 언제 오냐, 녹음 하나 같이 할 수 있냐고 하셨다. 영어 내레이션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연기와 노래) 두 개를 꾸준히 너무 잘하고 계시는 언니는 진짜 존경하는 아티스트였다. 배우이기도 하고 가수이기도 하고 정말 많은 이들의 뮤즈이기도 하고. 전 제가 갖고 있는 재능으로 언니를 도울 수 있다면 너무 하고 싶었다, 정말. 그래서 달려가서 진짜 바로 했다. (앨범) 릴리즈(발매)가 이때쯤일 줄은 몰랐다. 어느 앨범 몇 번째 트랙인 줄도 몰랐다. 언니를 좀 더 도와줄 수 있게 돼서 기쁘다. (드라마가) 잘 돼서 정화언니에게 도움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 '마녀의 법정'에서 윤현민 씨는 OST 참여했는데, 본인은 그렇게 해 보고 싶은 생각 없나.

네, 없어요. (웃음) 신기하죠! 왜 없을까요? 저는 노래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제 노래는 별로… 노래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근데 노래는 타고나야 하지 않나. (기자 : 노력으로 더 나아지는 분들도 있지 않나) 그래요? 한 번 해 볼까요? (웃음)

▶ 연기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 연기할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본 보면서 궁금증이 많았는데 연기를 해 내면서 느끼는 건, (제 궁금함과)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게 그닥 다르지 않다는 거다. 제가 여기가 좀 불편하다, 이 씬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으면 꼭 문제가 됐다. 이런 게 내공인가, 이런 것들이 쌓여서 제게 더 도움이 되겠구나 했다. 씬을 분석하고 힘 조절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어떤 장면을 찍어야 한다면 어떻게 넘길지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

연기는 항상 어려워요, 정답도 없고. 엄청나게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연기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주어진 것 안에서 답을 찾기 마련인데 일단 작가님이 흔들림이 없으면 큰 바람막이를 뒤에 두고 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마녀의 법정')님이 이렇게까지 확고했던 적이 오랜만이었다. 시청자 반응에 흔들리지 않았고 내러티브가 정확했다. 4부마다 한 덩어리로 해서 집중했다 털어내고 하는 페이스가 초반부터 항상 유지됐다. 쪽대본 없다는 것도 좋았다. 그게 당연해야 되는데 언제부턴가 좋은 게 됐다. 연기를 대사 치는 맛으로 하기도 하잖아요. 너무 실시간이면 약간 암송대회 같은 느낌? '저 다 외웠으니 이제 가시죠' 이렇게. (정도윤) 작가님이랑 이듬이가 되게 닮았다. 진짜 주체적이고. 근데 작가님은 감정 기복이 진짜 없으시고 말투가 딱딱하면서도 평온하시다. (웃음)

배우 정려원 (사진=키이스트 제공)
배우 정려원 (사진=키이스트 제공)
▶ 배우로서의 비전을 세워둔 것이 있나.

배움! 역할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프랑스어를 공부했더니 프랑스 영화가 들어왔다는 어떤 분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무언가 새롭게 터득해 놓으면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기는구나 깨달았다. 항상 무언가를 배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배우는 것에 닫혀 있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 드라마가 종영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그동안 좀 쉬었나.

푹 쉬었다. 10일 동안. 운동 시작하고. 핸드폰 하면서 쉬었다. (웃음) 핸드폰이 은근히 시간 뺏는다는 걸 이번에 많이 느꼈다. 그동안엔 제 시간을 뺏어간단 생각을 못했다. 현장에서는 이걸 두고 대본을 들고 다니고 그랬다. 드라마하면서는 핸드폰을 잘 안 쓰다 보니까 쉴 때 누가 핸드폰을 쥐어줘도 '나 외울거리 좀 줘' 그랬던 것 같다.

▶ 쉴 때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

그림도 그리고 필라테스를 한다. 핸드폰 게임은 진짜 이동하거나 쉬거나 할 때 부담이 없을 때 막 하다가, (작품 들어가면서는) 어느 순간 사치란 생각이 들었다. 대사도 완벽히 못 외우고 '네가 어디 감히 게임을!' (웃음) 이랬던 것 같다.

▶ '마녀의 법정'으로 올해 마무리를 잘했다. 연말을 보내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그쵸? 영화도 찍고. 친구들이랑 만나서 '1년 뒤에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위시리스트 짜고 '이것 좀 들어주세요, 주님' 한다. 사실 제가 (제작자나 작가들 찾아가서) 해 달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어떤 걸 쓰실 지도 모르고 제가 안 어울릴 수도 있으니까. 작품이 절 찾아오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올해 영화 하나 드라마 하나 찍고 싶다고 했다. 영화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내용이 너무 많이 무겁지 않고, 내가 신나서 할 수 있는 것, 주인공이 많아서 제가 부담을 덜 수 있는 것. 다시 영화 찍으면서 더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길 바랐는데 대본을 중간쯤까지 읽어보니 제가 구체적으로 얘기했던 그런 영화('게이트')였다.

2016년 11월 3일에 가까운 친구들이랑 모여서 빌었는데 그게 이뤄졌다. 너무 신기하죠? 올해도 해 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안 하면 기도를 해서 된 건지 원래 올 게 온 건지 그걸 잘 모른다. 말도 안 되는 디테일까지 쓰면 기도 때문에 됐다는 걸 안다. 나중에 인터뷰하게 되면 그때 썼던 수첩을 사진 찍어놓고 보여드릴게요. (웃음) (종교는) 중요해요, 저한테. 결정해 놓고 마음이 편하면 그게 내 거가 맞다. 잡음과 두려움이 많으면 제 것이 아니더라. 조금 잡음이 들려도 희한하게 제 맘이 편하면 그건 제 것이더라.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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