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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뛰고 쏜다' 韓 남자농구, 빠르고 화려해졌다

2017-08-21 06:00

'거침없이 뛰고 쏜다' 韓 남자농구, 빠르고 화려해졌다
김선형이 속공을 시작해 순식간에 수비수를 제치며 질주했다. 허웅은 골밑을 향해 뛰지 않고 외곽으로 빠졌다. 상대는 속공 수비 때 본능적으로 골밑부터 막는다. 김선형의 패스를 받은 허웅은 오픈 기회에서 주저없이 3점슛을 던져 림에 꽂았다. 김선형이 공을 잡은 뒤 허웅의 슛이 성공되기까지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김선형이 골밑으로 파고들다 왼쪽에 있는 최준용에게 공을 넘겼다. 수비가 빠르게 반응하자 최준용은 공을 잡자마자 좌측 45도 방향으로 '터치' 패스를 건넸다. 패스를 받은 이승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승현은 중거리슛을 성공시켰다.

21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끝난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과 뉴질랜드의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3-4위 결정전에서 나온 장면이다.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농구를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에서 대회명을 바꾼 2017 아시아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를 80-71로 누르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한국은 대회 첫 경기에서 개최국 레바논에게 졌고 4강에서는 이란에게 패했다. 그래도 4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올해부터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의 강호들이 FIBA 아시아에 편입돼 아시아 4강의 벽을 더 높아보였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했다.

그보다 더 큰 성과가 있다. 대표팀은 대회 기간 내내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펼쳐 팬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거침없이 뛰고 쏜다' 韓 남자농구, 빠르고 화려해졌다


◇김선형 중심으로 화려한 공격 농구 선보여

공격농구를 잘하기로 유명한 필리핀과 방패를 내려놓고 진검승부를 펼쳐 32점차 승리를 거둔 8강전 그리고 광복절에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한일전 등 관심이 집중된 승부에서 대표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시아 최강으로 불리는 이란전 역시 인상적이었다. 1쿼터 막판 21점차로 뒤졌던 한국은 폭발적인 공격력을 바탕으로 한때 역전에 성공하는 등 대등한 승부를 펼치다가 분패했다.

그동안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주성(원주 동부), 양동근(울산 모비스), 조성민(창원 LG) 등 터줏대감들이 떠난 자리를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 김선형(서울 SK), 이승현(상무), 허웅(동부) 등 전성기를 누리고 있거나 나이가 어린 선수들이 채웠다.

KBL 프로농구 리그에서 과감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로 잘 알려진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뤘다. 선수단 평균 나이는 26세. 선수 개개인의 색깔이 팀 전체에 녹아들기란 쉽지 않다. '허재호'는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고 보다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해 그 어려운 과제를 해냈다.

김선형은 이번 대회를 통해 KBL 간판 가드를 넘어 대표팀의 기둥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선형은 7경기 평균 12.1점, 4.6어시스트, 3.4리바운드, 2.3스틸을 올렸고 야투성공률 58.2%, 3점슛성공률 60.0%를 기록했다.

218cm의 장신 센터 하메드 하다디가 골밑에서 버틴 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김선형의 돌파를 막지 못했다. 김선형은 스피드와 기술을 활용한 돌파로 골밑에서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고 특히 속공에서 단연 독보적인 공격 옵션으로 군림했다.

◇'양궁 농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르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평균 25개의 3점슛을 던졌다. 필리핀(27.8개)에 이어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 성공률은 41.7%로 매우 높았다.

과거 한국 남자농구는 골밑 열세를 외곽에서 만회하려는 농구를 펼치던 시기가 있었다. '양궁 농구'라고 불렸다. '양궁 농구'라는 표현에는 3점슛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섞여 있었다.

대표팀이 이번에 장착한 '양궁'은 달랐다. 외곽에서 공을 돌리다가 3점슛 기회를 엿보는 단순한 농구가 아니었다. 김선형의 돌파, 오세근의 골밑 공략을 시작으로 선수 전원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격 기회를 엿보다가 외곽에서 찬스가 생기면 주저없이 패스를 건넸고 또 슛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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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초 공격제한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기회가 생기면 빠른 타이밍에도 슛을 시도하는 '얼리 오펜스(early offense)'의 강화가 3점슛 퍼레이드의 발판이 됐다.

세트오펜스의 목적은 확률높은 슛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공격을 펼친다고 해서 반드시 오픈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표팀은 다소 이른 타이밍이라도 슛 기회가 생기면 주저없이 슛을 던졌다. 슛 거리를 신경쓰지 않았다. 오픈 3점슛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던질 가치가 있다는 것이 최근 현대 농구에서 증명되고 있고 대표팀도 최신 트렌드를 그대로 따랐다.

허웅은 이번 대회에서 경기당 2.3개의 3점슛을 넣으며 47.1%라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이란전 맹활약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전준범(울산 모비스) 역시 경기당 2.0개를 성공시키며 46.7%의 적중률을 보였다. 임동섭(서울 삼성)도 평균 1.0개의 3점슛을 터트렸다.

슈터들만 슛을 던진 것은 아니다. 오세근의 중거리슛은 대표팀에게 없어서는 안될 무기였다. 특히 발이 느려 수비 커버 지역이 좁은 이란의 하다디를 상대로 큰 효과를 봤다. 이승현은 평균 1.0개의 3점슛을 넣으며 50.0%의 성공률을 보였다.

빅맨들의 외곽슛은 상대 수비를 외곽으로 나오게 해 김선형, 박찬희(인천 전자랜드), 이정현(전주 KCC) 등이 파고들 공간을 열어줬다. 이같은 '스페이싱(spacing) 농구'는 현대 농구에서 가장 유행하는 트렌드다.

◇'4인4색' 매력 넘치는 대표팀 골밑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표팀 선수들의 이타적인 플레이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평균 26.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해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특정 선수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농구를 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필리핀전에서 패스 농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76%가 넘는 3점슛 성공률이 기록된 배경이기도 하다.

박찬희는 경기당 8분이라는 비교적 적은 출전 시간에도 평균 5개의 어시스트를 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보여줬다.

최준용(SK)은 다재다능한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수비 코트에서 공을 몰고 전진해 가드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은 물론 탑에서 공을 돌리는 역할까지 해냈다. 최준용은 박찬희, 김선형 다음으로 많은 3.7개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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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도 오세근(5.7개)에 이어 가장 많은 3.6개를 기록했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2미터 장신의 최준용이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고 특히 높이와 스피드에서 높은 공헌도를 보이면서 대표팀의 공격적인 팀 컬러가 더욱 부각될 수 있었다.

대표팀 빅맨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무엇보다 주축 빅맨들의 색깔이 다 달라 매력이 넘쳤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MVP 오세근은 팀내 최다인 평균 16.0점을 올렸다. 건강한 오세근이 얼마나 무서운 선수인가를 새삼 확인시켰다. 이승현은 외곽슛으로 상대 수비를 끌어내는 '스트레치(stretch)형 빅맨'의 가치를 보여줬다. 김종규는 압도적인 스피드와 움직임을 앞세워 가드와의 2대2 공격의 핵심 파트너로 활약했다. 이종현(모비스)는 대회 막판 발뒤꿈치 부상 여파가 있었지만 팀내 가장 많은 평균 1.5블록슛을 올리며 높이의 힘을 과시했다.

남자농구의 미래로 평가받는 중앙대의 만 20세 빅맨 양홍석은 이번 대회에서 4경기 평균 4.5분 출전에 그쳤지만 처음으로 아시아 메이저급 성인 대회에 출전해 많은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이란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고 보완할 부분도 분명 있지만 대표팀은 공격적인 색깔의 농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4년 농구 월드컵 진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세대교체의 성공 전망을 밝혔다. CBS노컷뉴스 박세운 기자 sh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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