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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이브 생 로랑'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격랑의 시대 산 천재 패션 디자이너 전기영화…배제된 창작자 시선의 아쉬움

2014-06-23 00:00

[그 영화 어때] '이브 생 로랑'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영화 '이브 생 로랑'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1936-2008)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다.

사후 다큐멘터리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2010),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의 '생 로랑'까지 벌써 세 편에 걸쳐 소개될 만큼 영화계에서는 그의 삶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혁명가'로도 불린 천재 패션 디자이너의 속살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은밀했던 까닭이리라.
 
세계적인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의 갑작스런 사망 뒤, 그의 제자 이브 생 로랑(피에르 니네이)은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디올의 뒤를 이을 수석 디자이너가 된다.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첫 컬렉션을 성공리에 치른 이브는 평생의 동반자 피에르 베르제(기욤 갈리엔)를 만나게 된다.
 
이후 이브는 피에르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개인 브랜드를 설립하는데, 발표하는 컬렉션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이브는 모델, 디자이너들과의 방탕한 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피에르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조울증까지 악화되면서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이브가 크리스찬 디올에 입사한 때부터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입지를 굳힌 1960, 70년대 그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 초반에는 알제리 태생으로서 모국이 프랑스를 상대로 1954년부터 1962년까지 8년간 벌인 독립전쟁을 목도해야 했던 이브의 불안한 심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후 몬드리안 등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의 작품을 패션에 도입하고, 유럽을 휩쓴 68혁명의 전운 속에서 패션의 미래를 고민하는 등 그의 삶에 있어 몹시도 중요했을 순간들을 따라다니는 데 카메라는 온힘을 쏟는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의 격랑이 한 인간의 성장과 좌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짚어본다. 외유내강형의 예민한 천재로 표현된 이브는 1,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시대의 권위를 강요하던 잔인한 일상에 저항하고자 틀을 깬 패션에 몰입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극중 "제 유일한 전투는 옷을 만드는 거예요"라는 대사나 오트 쿠튀르(고급 여성복) 위주로 돌아가던 패션계의 관습을 깨려는 이브의 노력은 그 증거가 된다.
 
[그 영화 어때] '이브 생 로랑'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 영화는 '이브 생 로랑의 동반자 피에르 베르제가 유일하게 인정한 그의 공식 일대기'라는 홍보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브와 연인 피에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피에르의 내레이션이 흐르고 그가 젊은 시절 이브와의 일화를 회상하는 방식인데, 여기에서 이 영화의 작품성은 치명상을 입는 모양새다. 이브 생 로랑의 삶을 탐구한 뒤 얻어진 색다른 결과물을 영상에 옮기려 애쓰는 창작자로서 감독의 시선보다는 영화의 바깥에 있는, 현실의 피에르 베르제가 극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이다.
 
그렇게 피에르의 기억 속 자신과 이브는 몹시도 아름답다. 마약에 빠져 허우적댈 때조차 이브의 아름다움에는 흠집이 나지 않고, 피에르 본인의 이브에 대한 애정은 현실의 것이 아닌 낭만적인 신화에 가깝게 그려진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의 삶이 지금 우리의 일상에 파문을 던지지 못하고,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미화된 엿보기에 머무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창작자의 시선이 배제된 채 충실한 재현에 머문 아쉬움이 크다.
 
극중 이브 생 로랑을 연기한 피에르 니네이는 예민하고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다.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길과 한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손길은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의 긴밀한 협조 아래 이브 생 로랑이 디올 수장으로서 첫 선을 보인 트라페즈 라인, 여성 패션의 혁명을 일으킨 르스모킹 룩, 가장 아름다운 컬렉션으로 꼽는 러시안 룩 등 77벌의 오리지널 의상을 사용해 세기의 패션쇼들을 화려하게 재현한 점도 볼거리다.

이브 생 로랑의 실제 작업실과 파리에 위치한 YSL 본사, 그의 재가 뿌려진 모로코 마라케시 별장도 최초로 공개됐다.
 
청소년 관람불가, 106분 상영, 26일 개봉.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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