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응답하라 1990]'김성한 홈런'으로 유명한 한-일 슈퍼게임의 추억

1차전 동경돔에서 유일하게 홈런 치며 '체면 치레', 당시 전적 2승 4패

2014-02-01 16:26

▲1991년당시선수로만났던이들은지난해'레전드매치'의형태로다시만났다.사진│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제공
▲1991년당시선수로만났던이들은지난해'레전드매치'의형태로다시만났다.사진│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제공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1990년대 뜨거웠던 프로야구판의 열기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이 포착되곤 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러 차례 만원사례를 기록하면서 ‘암표상’이 활성화됐다는 점은 1990년대의 한 자화상이기도 했다. 여기에 1990년에는 역대 서울 연고팀으로는 유일하게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큰 시장이 있는 서울 연고팀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참고 : 원년 우승팀 OB 베어스의 당시 연고지는 대전이었다).

이렇게 1990년대는 시장이 가장 큰 연고지가 있는 팀의 우승으로 시작되어 제법 큰 흥행 규모로 막이 올랐다. 바로 이 시기에 ‘쌍방울 레이더스’도 창단식을 열고 전북 지역을 연고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대내적으로 큰 흥행을 보였던 1990년대 한국야구는 어설프게나마 ‘해외 바람’이 불면서 선수단과 구단 운영에 변화를 보였다. 이미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야구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어 국민 앞에 등장한 것과 동시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앞선 1991년에는 일본 프로야구와의 ‘단기 교류전’이 열려 많은 주목을 받곤 했다. 당시 양국의 슈퍼 스타들을 모아 치렀던 ‘한-일 슈퍼게임’이 바로 그것이었다.

‘6전 2승 4패’, 제 1회 한일 슈퍼게임의 추억

당시 한-일 슈퍼게임은 한국프로야구 1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대회이기도 하다. 이에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에서도 당대 최고의 선수들만을 모아 올스타팀을 꾸리는 등 일본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섰다. 당시 국내 올스타팀은 선동열, 송진우를 필두로 윤학길, 박동희, 조규제, 김용수 등 주로 긴 이닝을 소화하는 데 무리 없는 선수들로 구성됐고, 야수들 역시 김성한, 이정훈, 김민호, 박정태, 김기태 등 각 팀에서 중심 타자로 활약하는 이들로 구성됐다. 이쯤 되자 국내 야구팬도 ‘일본이 아무리 강해도 국내 최강으로 불리는 선수들이 일방적으로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정서가 깊게 배어있을 법했다.

하지만, 국내 올스타팀은 동경돔에서 열린 1차전에서 요미우리 에이스 구와타 마스미에 밀려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에는 아키야마와 오치아이가 구원으로 나선 조규제로부터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는 등 대량실점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국내 올스타팀은 8회 초 터진 김성한의 솔로 홈런으로 체면치레를 하는 등 3-8의 대패를 당해야 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구와타가 던지는 변화구(포크볼)는 이전까지 국내에서 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라며 일본 투수들의 변화구 구사 능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일본 투수들의 경기 운영 능력에 국내 올스타팀은 3차전까지 모두 내어주는 수모를 당했다. 그나마 4, 5차전을 대승으로 끝내는 바람에 ‘6전 전패’는 면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1-1로 맞선 상황에서 믿었던 투수 김용수가 노무라에게 역전 솔로포를 허용하며 또 다시 안타깝게 패해야 했다. 6전 2승 4패. 이것이 첫 한-일 슈퍼게임의 결과물이었다. ‘망신은 당하지 말자!’라고 했던 KBO의 1차 목표는 어찌되었건 성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당시 올스타팀의 중심 타자였던 장종훈 현 한화 코치는 “슈퍼게임 이후 우리 투수들도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고, 타격과 수비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슈퍼게임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야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자체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후 열린 제2회 대회에서는 2승 2무 2패로 호각세를 이루며 달라진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선수로 활약했던 이들은 현재 대부분 자국 프로리그에서 지도자로, 혹은 야구 해설자로 활약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프로야구 감독도 무려 세 명이나 배출(선동열, 류중일, 김기태)됐고, 프로야구 수석 코치(한대화 KIA 코치)와 대학야구 감독(장채근 홍익대 감독)도 있다. 또한, 당시 올스타로 활약했던 이들 중 세 명의 선수가 유명을 달리했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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