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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보이는 이하늬, 그가 밝힌 장녹수와의 '공통점'

[노컷 인터뷰] '역적' 장녹수 역 배우 이하늬 ②

2017-05-30 06:00

완벽해보이는 이하늬, 그가 밝힌 장녹수와의 '공통점'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나오는 장녹수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눈부시지만, 사실 남모를 아픔을 지닌 캐릭터다. 관기(궁중 또는 관청에 속해 가무, 기악 등을 선보였던 기생)였던 엄마 때문에 사또와 첫날밤을 보내야 했고, 두 번이나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음에도 '살기 위해' 마치 모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지내야 했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하늬는 뛰어난 외모뿐 아니라 서울대 국악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일찌감치 '엄친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게다가 공무원인 아버지, 가야금 연주가로 유명한 어머니와 언니, 최근 일본 특사가 된 중진 정치인인 외삼촌(문희상)까지 집안마저 평범치 않다. 이렇게나 '완벽해보이는' 그가 삶의 구석구석 '결핍'을 가진 장녹수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진 '역적' 종영 인터뷰에서 이하늬는 자신이 생각하는 장녹수에 대한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자아가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이 살기에는 너무나 '형벌' 같은 시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염려부터, 장녹수가 가지고 있던 '혁명가' 같은 면모에 대한 자랑까지… 평범한 질문에도 예리한 답을 내놓은 덕에 인터뷰는 내내 흥미로웠다.

(인터뷰 ① 요부 아닌 탁월한 예술인, 이하늬가 그린 새로운 '장녹수')
◇ 끊임없는 대화 끝에 탄생한 장녹수


예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두 남자와의 관계도 챙겨야 했던 장녹수 역할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하늬는 제작진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덕분에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살려낼 수 있었다. 제작진은 배우가 그리는 녹수에 대해 충분히 들어주었고, 덕분에 이하늬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전히' 이해한 채로 연기할 수 있었다. 밤샘 촬영이 일상인 드라마 현장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어떤 작품을 할 때 (촬영 기간에) 뭘 배워서 준비해서 갈 수는 없다. 생방송으로 한 주에 영화 한 편 분량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준비를 끝냈어야 한다. 그런데 '역적'은 그런 시간적 여유를 주셨다. '뭘 할 수 있냐', '뭘 하고 싶냐'고 계속 물으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저도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원할 때 어떤 것을 쓸 수 있는지를 알려드릴 수 있었다. 도드라지게 티가 안 날 수도 있지만, 작은 차이를 위해 이런 밑작업들이 계속 있었다. 장구춤 씬에 나오는 장구와 옷도 다 제작한 것이다. 그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고 부연했다.


역사를 전공한 김진만 감독과 황진영 작가의 견고한 역사관도 '역적'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 포인트였다. 드라마에 필요한 사료들을 철저히 준비해 필요할 때 탁탁탁탁 꺼내놓을 정도였다.

이하늬는 "역사관이 엄청 튼튼했다. 있었던 사료를 마이너 관점에서 보거나 재해석하는 거지, 역사왜곡까지는 안 한다는 기준이 분명했다. 두 분의 합 덕분에 '역적'이 탄탄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많이 비틀지 않으면서도 녹수와 연산을 재해석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더 이상 개돼지처럼 살 수 없어 높은 곳을 꿈꿨던 여성 혁명가

'역적'은 기존 사극과는 다르게 장녹수의 '권력욕'과 그 권력욕이 시작된 씨앗을 집중 조명했다. 춤, 노래, 악기까지 능숙하게 다루는 뛰어난 예인이었음에도 '기생'이라는 이유로 험한 꼴에서 안전하지 않았던 녹수는 조선처럼 보수적인 나라에서 '관기 출신의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일찍부터 깨달은 자였다.

나랏님을 내 남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단순히 '팜므파탈'로서의 존재감 과시가 아니었다. '개돼지' 취급 당하는 민초로서 겪은 팍팍한 삶을 접고, '저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하늬가 펼쳐낸 녹수는 그래서 '달랐다'.

완벽해보이는 이하늬, 그가 밝힌 장녹수와의 '공통점'
"사실 녹수나 연산이나 관련 사료가 많이 폐기처분되어서 별로 없다. 실제와 다른 부분이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해서 진위여부를 판가름하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사대부여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기생이었던 여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나. '이 세상 너무 거지같아서 못 살겠다, 나 한 번 해 볼래, 맞짱 떠 볼래'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동기 기생이 사또에게 눈을 찔려 들어오는 걸 보고 결심했던 것 같다.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는 올라가도록 해 보겠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와닿았다. 지금도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살기에 힘들다고 느끼는데, 조선시대에 그런 출신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아티스트적인 성향이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에게 그런 세상을 사는 건 형벌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질문을 무수히 많이 던졌다. 진만 감독님은 (이런 녹수에게) '여성 혁명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시기도 했다."

◇ 왜 사람들은 '거죽'에만 신경 쓸까

마음 속 깊은 공감이 있지 않고서는, '진짜 그 사람인 것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하늬는 내면에 무엇이 있을지가 아니라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판단된 장녹수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영혼 끝자락에서 끌어올린 정수의 것을 하고 있는데도 아마 사람들에게 무참히 밟혔을 것이다. '노래는 됐고 이리 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겠나. 저라는 사람 자체도 당연히 연예인으로서 섹스어필하는 느낌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다들 거죽에만 신경 쓰고 마치 그게 다인 것처럼 얘기할 때가 많다. 그런 부분이 녹수와 비슷했던 것 같다. 왜 내 안에 있는 것은 궁금해하지 않지? 예인으로서, 배우로서의 내 감성이나 내 얘기는 궁금하지 않나? 하는 점이 맞닿아있는 것 같다."

이하늬는 무엇보다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가장 약한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다른 약자에게도 돌아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는 동물들에 대한 보호법이 진짜진짜 너무너무 시급한 것 같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 그렇게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다. 쳇바퀴처럼 돌아온다. 아주 약한 동물을 보호하는 게 생기면 또 다른 약자의 보호가 가능해진다.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지 않나.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인간은 아주 유한하고 유약한 존재인데, 약자에 대한 보호 없이 살아간다는 건 모두에게 비극인 것 같다."

◇ 시국보다 재미있는 드라마 표방했던 '역적'이 주는 메시지

'역적'은 지난 1월 30일 첫 방송됐다. 폭정을 저지르는 무능한 왕이 있고, 그 '판'을 뒤집어보고자 하는 민초 출신의 주인공이 있는 구도부터가 어지러웠던 당시 시국을 연상케 했다. '아모개' 역을 맡았던 김상중은 제작발표회에서 '역적'이 '시국보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이하늬에게도 '역적'은 잊지 못할 작품이다. 결코 여유롭지 않은 상황임에도 쉼 없는 대화와 토론으로 드라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모두가 애쓴 까닭이다.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었다.

"드라마에서 시청률을 떠나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저희는 더 퀄리티 있는 작품을 '우리가' 만들고 있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됐다. 끝났을 때 모두가 가족 같았고, 다같이 만족감을 느꼈다. FD 막내서부터 현장 다니는 매니저, 조명팀 막내까지도. 그런 기운이 감도는 현장에 있는데 어떻게 허투루 연기를 하겠나. '역적'은 민중들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민중이 만들어 낸 승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모든 스태프들을 기억한다. 이름 없는 배우를 엔딩에 쓴 것도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본다. 저는 너무 감동이었다. '역적'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줬다. 김 감독님은 '시청률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알게 해 주신 분이다."

자신을 '갈아 넣은' 이런 류의 연기를 또 다시 할 수 있을지 묻자 곧바로 "할 수 있을까요?" 하는 답이 돌아왔다. 일단은 전작을 '잘 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하늬. "요추 아프다고 징징대면서도 다음 작품은 뭘 할까 생각했다. 그만큼 연기하는 게 좋은가 보다"라는 말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30부작이라는 대장정을 마친 지 2주다 되지 않았지만, 이하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바지런히' 살아갈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기부 프로젝트 '옥스팜 트레일워커' 프로그램을 마친 그다.

"나눔과 기부는 제가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인이고 사랑받는 직업이지 않나. 받은 사랑은 갖고만 있으면 반드시 썩는 것 같다. 여배우병이 나지 않게 자꾸 잡아줘야 한다, 저 스스로도. (웃음) 항상 높은 곳을 보면 한도 끝도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건강한 작업들을 놓칠 수 없다."

완벽해보이는 이하늬, 그가 밝힌 장녹수와의 '공통점'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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