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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썰] 얼떨결에 준우승까지…기자의 캐디 체험기

※ 이번 칼럼은 마니아리포트 임정우 기자가 지난 10월 열린 KPGA 코리안투어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문도엽(25)의 캐디로 직접 뛰었던 체험기를 정리했습니다. 임 기자는 학창시절 프로 골퍼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대회에서 임 기자가 캐디를 한 것은 기사 작성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닙니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다른 기자들은 할 수 없었던 독특한 경험을 회상해 보는 칼럼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임정우 기자(왼쪽)가 10월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캐디백을 멨다. 오른쪽은 문도엽. 사진=마니아리포트


"제가 캐디 해도 되겠습니까?" 

지난 10월 4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문도엽 프로가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캐디를 급하게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전화를 걸어서 “내가 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문 프로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캐디로 프로 무대에 한 번 서 보고 싶었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문도엽 프로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자’는 걱정도 컸다. 

문도엽은 올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무명에 가까운 선수다. 2013년 투어에 데뷔한 후 솔라시도-파인비치오픈에서 준우승한 것 외에는 특별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후 시드전을 오가며 힘겹게 투어 생활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올 시즌은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1라운드가 열린 10월 6일. 문도엽 프로는 오전 8시 10분 티업이었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전날 밤잠도 설쳤다. 그러나 첫 홀인 10번 홀을 보기로 출발하면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첫 홀 이후부터는 미리 준비해서 클럽을 전해줬다. 이어진 13번 홀과 14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즐겁게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5번 홀에서 티샷이 OB(아웃오브바운스)가 나면서 더블보기를 했다. 전반에 2오버파로 마무리했을 때 ‘못 친 이유가 내 탓’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문도엽 프로는 웃으면서 “처음인데 정말 잘한다. 못 치고 있는 것은 내 문제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문도엽 프로는 후반에 2타를 줄여 1라운드를 이븐파로 마무리했다. 


직접 보니 너무나 다른 프로의 세계 

경기 후 또 다른 일정이 시작됐다. 점심 식사를 한 뒤 연습장과 퍼팅 그린에서 부족한 부분을 연습했다.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도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 예상 외의 ‘횡재’를 했다. 최경주, 김시우 프로 등 PGA투어 프로들의 연습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김시우 프로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장타를 쳤고, 스물 한 살의 어린 나이인데도 성숙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최경주 프로는 아우라가 달랐다. 연습할 때도 눈빛이 정말 매서웠다. 문도엽 프로도 옆에서 “역시 최경주 프로님은 최고의 프로님이다”라고 연신 감탄했다. 

2라운드는 1라운드에 비해 컨디션이 더 좋았다. 문도엽 프로도 만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2라운드 5개 홀을 지나면서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래도 운동했던 사람인데, 3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백을 메고 뛰어다니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내색할 수 없다는 게 더 괴로웠다.
마음 한 구석엔 ‘컷 탈락하면 안 힘들 텐데’라는 마음이 아주 조금 생겼다. 물론 결과는 컷 통과. 나중에 문 프로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그런 생각 충분히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니까 끝까지 열심히 하자”고 말 해줬다. 

참 이상하게도 3라운드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아팠던 어깨와 다리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문도엽 프로의 샷과 퍼팅도 날카로워졌다. 3라운드에서는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았다. 
대회 중에 선수와 캐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도 늘 궁금했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문도엽 프로와 ‘끝나고 뭐 먹을까, 요즘 노래 뭐가 좋다’ 등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대망의 최종라운드가 다가왔다.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10위였다. ‘문 프로가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막연한 감이 계속 있었지만, 부담 줄까봐 따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4라운드 초반, 버디 기회가 자꾸 빗나가자 문도엽 프로도 나도 점점 조급해졌다. 둘 다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는지 4번 홀에서 “침착하게, 침착하게, 아직 14홀이나 남아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려 보자’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8번 홀에서 세컨드 샷을 핀 20cm에 붙이며 완벽한 버디를 성공시켰다. 이후 10번 홀과 11번 홀까지 버디가 이어져 점점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이때부터는 힘든 건 생각조차 안 났고, 경기에 빠져들어 샷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어느새 선두와 2타 차. 하지만 14번 홀에서 보기가 나왔다. 불 붙었던 추격전에 찬물이 뿌려진 기분이었다. 

문도엽(왼쪽 앞)이 같은 조의 선수들과 페어웨이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마니아리포트


연장전 준비? 짐 싸다 말고 앉았던 긴박한 상황 

15번 홀을 앞두고 문도엽 프로가 ”보기는 잊고 다시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말했다. 이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5번 홀 버디를 시작으로 17번 홀과 18번 홀 버디를 잡은 것이다. 18번 홀 칩인 버디는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수많은 갤러리들 앞에서 칩인 버디가 들어간 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었다.
우리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계에 잡혔다. 사실 그 때 한 말은 ”핀 맞고 안 들어 갔으면 2m 이상 지나쳤을 뻔했다“는 이야기였다. 기분 좋게 경기를 마무리했고, 당시 단독 선두 주흥철 프로와 3타 차로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집에 가려고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흥철 프로가 17번 홀에서 OB가 났다. 혹시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17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한 주흥철 프로와 순식간에 1타 차가 됐다. 문도엽 프로와 나는 짐 싸던 걸 멈추고 클럽하우스에서 중계를 지켜봤다. 

이때 뒷조에서 플레이를 했던 김시우 프로가 18번 홀에서 1.5m 완벽한 버디 찬스를 잡았다. 넣으면 주흥철 프로와 공동 선두다. 당연히 넣을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성이 들려왔다. 김시우 프로가 버디 퍼팅을 놓친 것이다. 김시우 프로와 문도엽 프로가 동타, 주흥철 프로가 우리보다 1타 앞선 채 18번 홀에 들어섰다. 

나는 속으로 ‘이러다 연장 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몸을 풀었다. 주흥철 프로는 18번 홀에서 그린을 놓치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린 왼쪽 뒤편으로 공이 갔다. 어프로치 역시 조금 짧았다. 약 1.4m의 파 퍼팅이 남은 상황. 넣으면 우승, 못 넣으면 연장이다. 손에 땀이 흘렀다. 
그러나 주흥철 프로는 침착하게 파 퍼트를 성공시켰다.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우승컵에 키스하는 주흥철. 사진=마니아리포트


투어의 모든 프로, 캐디들께 존경을 

문도엽 프로와 나는 아쉽지만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차에서는 아쉬운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 문도엽 프로는 “네가 내 최고 성적을 낸 캐디다”라고 말했다. 나도 “형도 제 마음 속에는 최고의 선수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직접 캐디를 해 보니, 프로 선수들은 정말 달랐다. 철저한 자기관리, 끊임 없는 노력, 오로지 골프에만 집중하는 집중력은 투어를 뛰는 프로 선수들 모두 같았다.  

이렇게 나의 캐디 데뷔전은 끝났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준우승 캐디’라고 부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가방을 들고 다닌 것 밖에 한 일이 없었다. 보통 캐디들처럼 거리 계산, 라이 측정까지 한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려운 선택을 한 문도엽 프로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시즌 동안 고생한 선수들과 캐디 분들께도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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