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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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LG 카라스코, 완벽하게 던지고 웃지 못한 밤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한 카라스코의 담담함이 말해주는 것

2026-08-03 10:31

LG 카라스코의 압도적인 투구 / 사진=LG 트윈스 제공
LG 카라스코의 압도적인 투구 / 사진=LG 트윈스 제공
지난 8월 1일 토요일 밤, 메이저리그 다승왕 출신 투수가 한국 KBO리그 무대에 처음 섰다. 카를로스 카라스코, 최근 3위까지 밀려난 LG가 후반기 반등을 걸고 데려온 투수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7이닝 동안 안타 하나, 볼넷 하나 내주지 않는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탈삼진은 단 2개였지만 74개의 공으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찔러 두산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았고 수비의 도움도 있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9km/h, 여기에 커터와 싱커,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까지 섞어 던지며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노련함이 빛났다.

5회초 오지환과 이주헌의 연속 2루타, 홍창기의 적시타로 팀이 2점을 내며 승리 요건까지 완성됐다. 마운드 반대편에는 두산의 토종 에이스 곽빈이 있었는데, 그 역시 만만치 않은 호투로 팽팽한 균형을 만들었다.

그런데 카라스코가 내려간 뒤 8회말, 불펜이 흔들리며 두산에게 동점을 내줬다. 김민석의 팀 첫 안타와 김대한의 2루타, 대타 박지훈의 적시타가 이어진 결과였다. 경기는 결국 연장 11회까지 이어졌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2대2로 끝났다.

완벽투를 하고도 승리도 패배도 아닌, 애매한 결과를 받아든 셈이다. 데뷔전에서 무실점 역투를 펼치고도 승수를 챙기지 못한 외국인 투수의 사례는 KBO에서도 흔치 않다.

여기서 뇌과학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이 있다. 사람은 결과가 기대와 어긋날 때 뇌 안에서 일종의 재편집 작업을 벌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재평가'라 부른다.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틀로 다시 써서 감정의 무게를 조절하는 과정이다.

이 작업의 핵심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가르는 데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 소재라 부르는데, 통제할 수 없는 일까지 자기 책임으로 끌어안는 사람일수록 실패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통제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정확히 나누는 사람은 같은 실패 앞에서도 다음 걸음을 뗄 힘을 잃지 않는다. 카라스코가 던진 74개의 공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8회말 불펜에서 벌어진 일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이 둘을 뒤섞지 않는 것, 그것이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정신적 근력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재해석 습관이 반복될수록 같은 사건도 시간이 지나 덜 아프게 기억된다고 말한다.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카라스코는 메이저리그에서만 17시즌, 343경기를 던졌다. 2017년에는 18승으로 아메리칸리그 다승왕에 올랐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패전과 부진도 함께 겪었다.

2019년에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도 훈련장으로 돌아와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재기 선수로 뽑힌 이력도 있다.

숱한 승리와 그보다 많았을 허무한 패배, 그리고 생사를 오간 투병 생활까지 통과하며 그의 뇌는 결과와 과정을 분리하는 회로를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왔을 것이다.

LG 카라스코 / 사진=연합뉴스
LG 카라스코 / 사진=연합뉴스
그는 경기 뒤 "아쉽게 승리를 선물해 드리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팬분들과 함께 잠실의 주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말도 남겼다.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다음을 바라보는 이 화법 자체가, 그의 뇌가 오랜 세월 훈련해온 재평가 능력의 증거다.

이 담담함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자성어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에는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적벽에서 동남풍을 빈 뒤 승부의 나머지는 하늘에 맡겼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카라스코의 74구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 그러니까 불펜의 어깨와 상대 타자의 방망이는 애초에 그의 손을 떠난 영역이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결과 앞에서 초조해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살다 보면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밤을 만난다. 시험을, 면접을, 어떤 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애썼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의 뇌는 무엇을 편집하고 있을까. 카라스코처럼 담담히 다음 등판을 기약할 수 있을지, 이번 주는 그 물음을 각자의 가슴에 남겨본다. 그의 다음 등판일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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