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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53] 왜 ‘천하장사’라고 말할까

2026-04-13 07:26

씨름 천하장사를 여러번 제패한 김민재(영암군민속씨름단)[대한씨름협회 제공]
씨름 천하장사를 여러번 제패한 김민재(영암군민속씨름단)[대한씨름협회 제공]
‘천하장사’는 한자어이다. 세상 전체, 온 세상을 의미하는 ‘천하(天下)’와 힘이 세고 용맹한 사람이라는 뜻인 ‘장사(壯士)’가 합성한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중국 고전에서 유래했으며, 예로 ‘사기(史記)’ 같은 역사서에서 뛰어난 무장이나 영웅을 칭하는 말로 쓰였다. 이후 동아시아 전반에서 ‘최고의 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는 ‘천하장사’라는 말이 검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하와 장사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두 단어를 합성한 말이 민간에서 많이 썼을 것으로 보인다. 문집, 야사 등에서는 천하장사가 특정 인물을 칭찬하는 수식어로 등장한다. 힘이 매우 센 사람, 무예가 뛰어난 인물, 비범한 용력을 가진 장수 등의 의미로 문학적·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됐다. 조선시대에도 천하장사라는 말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공식적인 우승 칭호가 아니라 단순한 찬사 표현이었던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 천하장사는 씨름 대회 우승자에게 주는 공식 타이틀이다. 스포츠 용어로 정착된 말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천하장사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1년 12월3일자 ‘천하장사(天下壯士)로 유명(有名)한 약목군금야입경(若木君今夜入京)’ 기사는 ‘전하상사로 그명성이 세계를 뒤덥게유명한 강력가약목즉환(약목죽환(若木竹丸))군과 일본력긔계의권위신전덕징(신전덕(神田德)□)량군은 보사의초빙을 밧어 제이회 전조선력긔대회에 출전하야 조선일류선수들과 대항시합을 거행코저 지난삼십일밤 다수한전송리에 동경(동경(東京))을출발하엿다는 입전이 작일본사에도착하엿다 그리하야 량선수는 금이일야에 경성역착 특급렬차로 그용자를낫라내이게되엿다 금번대회에 량응이 서로싸홀상관은 그실력을밀우워보와 응당를보다 더뜨거운접전을연술하고야말 것이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1931년 일제강점기 신문이라서 한자어를 그대로 풀어쓴 표현이 많고, 표기 방식이 지금과 다르지만 천하장사라는 표현이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전통 스포츠인 씨름이 대중화되면서 천하장사는 단순한 수식어를 넘어 공식적인 최고 칭호로 자리 잡았다. 특히1980년대 들어 전국 규모의 씨름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에게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이 부여되면서 이 말은 비로소 제도적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존에 존재하던 언어적 상징이 스포츠 제도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됐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천하장사의 의미는 한층 더 확장된다. 이제 이 표현은 단순히 힘이 센 사람을 넘어,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을 비유적으로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스포츠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대중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천하장사급’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물리적 힘에서 출발한 개념이 경쟁과 성취의 상징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오늘날 천하장사는 여전히 씨름판에서 가장 빛나는 칭호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최고’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한 단어에는 과거의 영웅 서사, 근대의 언론 표현, 그리고 현대 스포츠의 제도까지 겹겹이 쌓여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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