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free throw’는 19세기 말 농구가 규칙화되면서, 파울을 당한 선수에게 상대 방해 없이 혼자 던지게 하는 슛이라는 의미에서 처음 사용됐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자유투라는 말을 일제강점기 때부터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6년 12월14일자 ‘일부개정(一部改定)된 농구규(籠球規) 【2】 1927연도(年度)’ 기사에서 ‘제십일장일조중(第十一章一條中)(타임아웃에관(關)한 것) 차조(此條)는 이전조문(以前條文)과 상동(相同)하야 그중 변경(中變更)된 것은 뽈이일회우(一回又)는 일회이상(一回以上)『프리드로우』하는 경우(境遇)에 취(就)한후(後)는 후보교체우(候補交替又)는 타임아웃을 청구(請求)할수업다【해(解)】차(此)는 일회(一回)나그이상(以上)『프리드로우』할때에 이것을 집행(執行)하는 상태(狀態)에 취(就)한다음에는 타임아웃을청구(請求)할수업다 그러나『파을』로 인(因)하야 호각을불은후 심판(後審判)이뽈 을자유투선(自由投線)에갓다노키전 중간(前中間)에는 타임아웃을청구(請求)할 수가 잇스며 혹(或)은쌍방(雙方)틤에게 프리드로우를 여(與)한 경우(境遇) 타임아웃을 일방(一方)틤이 프ㄹ드토우를한후 타편(後他便)프리드로우 라인에까지 갓다놋는 그중간(中間)에청구(請求)할수업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1926년 당시 농구 규칙(타임아웃 관련 조항)을 한자·옛맞춤법·영어 혼용으로 설명한 것인데, 자유투가 시작되면 흐름을 끊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의 규칙을 설명했다. 기사에는 ‘프리드로우(free throw)’라는 영어 음역과 함께 ‘자유투선(自由投線)’이라는 번역어가 병기돼 있다. 자유투라는 말이 아직 완전히 정착되기 전, 외래어와 한자어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북한에선 자유투를 ‘벌넣기’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영어식 표현과는 전혀 다른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벌넣기는 파울이라는 규칙 위반이 있었고, 그에 대한 제재로 점수를 넣게 된다는 의미이다. 북한 농구에서 자유투는 ‘방해 없는 슛’이 아니라 ‘반칙에 대한 벌의 집행’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명법은 북한 체육 용어 전반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북한은 외래어를 음역하거나 추상적으로 번역하기보다, 행위의 목적과 원인을 드러내는 의미 중심 용어를 선호해 왔다. ‘자유’라는 다소 관념적인 개념 대신, 규칙 위반과 책임, 결과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벌’이라는 말을 택한 것이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벌넣기라는 표현은 선수와 관중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유투가 득점 기회라기보다 상대의 잘못으로 주어진 결과라는 인식이 강화된다. 이는 자유투를 던지는 행위를 개인의 기술 시험이 아니라, 규칙 질서가 작동한 증거로 바라보게 만든다. 농구 경기의 한 장면이 규율 교육의 장면으로 겹쳐지는 셈이다.
언어는 사고방식을 만든다. 자유투라는 말이 공정성과 균형 회복을 강조한다면, 벌넣기는 규칙 위반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강조한다. 같은 슛을 두고도 하나는 ‘자유’를, 다른 하나는 ‘벌’을 말한다. 이 차이는 스포츠를 놀이와 경쟁의 장으로 보느냐, 규율과 통제의 질서로 보느냐의 차이이기도 하다.
결국 북한에서 자유투를 벌넣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번역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농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도 규칙과 책임, 위반과 제재라는 사회적 가치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는 인식의 반영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