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dribble’은 ‘방울지다, 조금씩 떨어진다’는 의미인 고대·중세영어 동사형인 ‘dribben, driblen’이 어원이다. 16-17세기 근대 영어에서 ‘dribble’라는 단어로 사용했다. 스포츠 용어로는 19세기 축구·농구 등에서 공을 작은 터치로 계속 밀려 이동시키는 기술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큰 한 번의 움직임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작은 접촉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였다. 이 뜻은 고어적 의미로 ‘액체가 조금씩 떨어진다’는 것과 연결된다. (본 코너 402회 ‘왜 드리블(Dribble)이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드리블’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8년 5월17일자 ‘평양축구(平壤蹴球) 최종일(最終日) 동광(東光)(청년(靑年))일광(日鑛)(실업(實業))과 숭인상업(崇仁商業)(중등(中等))제패(制覇)’ 기사는 ‘후반(後半) 오분(五分)에 안주군(安州軍) LW금옥택군(金玉澤君)『드리블패스』한것을 0F전창환군(全昌桓君) 문전오미(門前五米)에서『슛』하엿스나 GK의선방(善防)으로 무위(無爲)▲십삼분(十三分)에 다시『찬스』잇섯스나범축(凡蹴)으로 월문(越門) ▲삼십분(三十分)에동광군(東光軍)『찬스』잇섯스나 RF의선방(善防)으로무위(無爲)’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드리블패스(dribble pass)’는 ‘드리블을 하다가 내주는 패스’를 의미하는 초기 외래어 복합어이다.
북한에선 ‘드리블’을 ‘몰고달리기’라고 표현한 것은 외래어를 배격하고 기술 동작을 직관적으로 설명하려는 조선식 언어정책 때문이다. 그 결과, ‘드리블’은 추상적 기술 용어가 아니라 공을 몰고 달리는 구체적 행위로 보고 이와같은 표현을 만들어냈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언어순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식민지 시대의 일본어 잔재는 물론, 세계화와 함께 자연스레 유입된 영어 표현까지 광범위한 정리 대상이 됐다. 축구용어도 예외가 아니다. 패스(pass)는 ‘넘기기’나 ‘공연락’, 슈팅(shoot)은 ‘차기’, 센터링은 ‘가운데로 높이 넘기기’, 코너킥은 ‘구석차기’가 됐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참조)
북한식 체육 용어는 ‘기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을 선호한다. 기술을 전문용어로 명명하기보다 행동의 본질을 설명하는 직설적 표현을 쓰는 것이다. 북한 언론 매체에서는 “우리 선수는 중앙선을 넘어 몰고달리기로 상대 진지를 파열시켰다”, “왼쪽 공격수의 빠른 몰고달리기가 득점 계기가 되었다”, “몰고달리기로 수비수를 따돌리는 기술이 향상되었다”라고 표현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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