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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93] 북한에선 왜 ‘배구’를 ‘공넘기기’라고 말할까

2025-11-02 06:56

2023 항조우 아시안게임 북한여자배구팀 경기 모습
2023 항조우 아시안게임 북한여자배구팀 경기 모습
일본식 한자어인 ‘배구(排球)’는 영어 ‘Volleyball’을 번역한 말이다. 밀친다는 의미의 ()’와 공을 의미하는 ‘()가 합해진 표현이다. 공을 손으로 밀어낸다는 뜻이다. 실제 경기 동작과는 맞지 않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배구라는 말이 생겼는지는 불분명하다. 1895년 미국 메사추세츠주 홀리오크에서 YMCA 체육부장을 하던 윌리엄 모건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Volleyball’YMCA 지도자들에 의해 1910년 필리핀에, 1913년 중국에 소개되면서 일본과 한국에도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41127일자 농구(籠球)·배구(排球)의 모범경기회(模範竸技會)’ 기사는 ‘시내종로청년회관체육부(市內鍾路靑年會舘體育部)에서는 내이십구일오후이시(來二十九日午後二時)부터 그회관(會舘)에서『발레뽈』과『빠스켓뽈』의모범경기회(模範竸技會)를 연다는데 입장(入塲)은 무료(無料)이나 중등학교이상학생(中等學校以上學生)에게만 한(限)한다고’고 전했다. 우리나라 언론은 이 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때부터 배구라는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Volleyball’은 처음 창안됐을 때는 민토네트(Mintonette)’로 불렸다. 배드민턴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1896년 첫 시범경기를 지켜본 YMCA 지도자 알프레드 할스테드는 경기의 성격에 착안해 ‘Volley Ball’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VolleyBall’은 처음 만들어질 때는 두 단어로 이뤄져 있었다. 1900년대 초 스팔딩을 통해 배구의 규칙이 본격 보급되면서 한 단어가 됐다.
‘Volleyball’‘Volley’는 원래 라틴어 ‘Volare’가 어원이다. 고대 프랑스어 ‘Voler’와 중세 프랑스어 ‘Volee’을 거쳐 영어로 들어왔다. 모두 날아간다는 의미이다. 인터넷 용어사전 매리엄 웹스터에 따르면 1591년부터 영어 ‘Volley’가 처음 사용됐다. 스포츠에서 ‘Volley’는 날아가는 볼을 찬다는 의미로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축구에서 ‘Volley Kick’는 공이 땅에 닿기 전 공중에서 공을 차는 것을 말한다. ‘Volleyball’이라는 말은 ‘Volley’라는 단어가 포함됨으로써 경기 동작을 의미하는 뜻이 됐다. (본 코너 454‘Volleyball’'배구(排球)라고 말할까참조)

북한에선 배구공넘기기라고 말한다. 공을 네트 위로 넘기며 승부를 가르는 경기의 본질을 담은 표현이지만, 그 이면엔 외래어를 배격하고 ‘우리식 언어’를 세우려는 북한의 언어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은 일본식 잔재를 일찍이 정리하며, 그 대신 뜻이 분명한 우리말을 택했다. ‘공넘기기’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배구는 혼자 할 수 없는 경기다. 여섯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공을 주고받아야 한다. 북한은 이를 사회주의의 협동정신과 맞닿은 운동으로 해석한다. ‘조선체육’지는 “공넘기기는 협동의 미덕을 기르는 집단경기”라며 “기술보다 호흡이 중요하다”고 썼다. ‘공넘기기’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집단의 조화를 상징하는 언어가 된 셈이다.

집단의 철학이 함께 엮여 있다. ‘공넘기기’는 그들의 언어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남쪽에서 보면 다소 낯설고 투박하지만, 그 말 속엔 ‘우리식으로 세상을 표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결국 ‘공넘기기’는 단순한 배구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거기에는 언어를 통해 체육을, 체육을 통해 사상을 말하려 한 체제의 성격이 담겨있다.
북한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여자배구에서 한국을 3-0으로 꺾고 사상 처음으로 단체종목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처음으로 기록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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