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대한체육회 홍보직원에서 ‘대박식당’ 주인으로…“은퇴이후 인생이 즐겁다”

2023-11-21 08:00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한 김태형 장수대 황태 해장국 대표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한 김태형 장수대 황태 해장국 대표
맛집의 포스가 강하게 느껴졌다. 메뉴에는 황태 해장국과 고기 전, 메밀 전병 3가지와 함께, 소주, 맥주, 막걸리 3가지 주류만이 올라있었다. 아주 심플했다. 반찬도 어묵조림, 깍두기, 김치와 황태를 찍어 먹을 겨자장만이 나왔다. 이내 보글보글 끓는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 황태 해장국이 나왔다. 황태 해장국은 거의 곰탕 수준으로 뽀얗고 진했다. 오동통하게 씹히는 황태는 아주 맛이 있었다. 두톰한 메밀 전병은 그야말로 ‘겉바속촉’이었다. 바삭바삭한 겉질 안에는 부드러운 야채 속으로 가득찼다. 메밀 전병을 입으로 집어넣자 고소한 풍미가 강하게 느껴졌다.

인기 메뉴 황태 해장국. 곰탕같이 뽀얗고 진한 맛을 준다.
인기 메뉴 황태 해장국. 곰탕같이 뽀얗고 진한 맛을 준다.


파주 출판문화단지 영화마을 근처에 자리잡은 ‘장수대 황태 해장국’은 파주에서도 아주 유명한 ‘대박 식당’이다. 주중에도 아침과 점심 손님이 많으며, 주말에는 대기표를 받아야 식사를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3-4시면 문을 닫는다.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매일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서란다.

식당 안에는 수많은 스포츠사진과 용품들이 벽과 장식장에 놓여 있었다. 황영조, 이봉주를 비롯해 한국 스포츠 국가대표들이 올림픽과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는 사진들이 있었으며, 각종 국가대표 유니폼과 모자 등이 있었다. 장수대 황태 해장국 김태형(65) 대표는 원래 한국스포츠의 정통 홍보맨이었다. 그는 대한체육회에서 홍보 업무를 수십년간 해오다 2019년 정년 퇴직했다. 퇴직 이후 2살 연상의 아내와 외아들이 운영하던 식당 일을 함께 하면서 자신이 예전 모아두었던 각종 스포츠 자료를 식당에 전시하게된 것이다.

그는 원래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강릉 중앙고, 한국체대에서 창던지기 선수로 활동하다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대비해 대한체육회 전문체육 직원으로 입사했다. 홍보실에서 오랫동안 언론 담당관으로 근무하며 많은 기자들에게 가깝게 지냈다. 각종 아시안게임, 올림픽, 유니버시아드 등 동하계 국제 종합대회에 홍보담당으로 언론에 많이 알려졌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때부터 친하게 알고 지낸 그를 지난 17일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대한체육회 퇴직 이후 새로운 인생 2막을 사는 그의 모습이 궁금해서다. 그는 아직도 젊은 시절에 못지않은 열정과 체력을 갖고 대박집 셰프겸 대표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대한체육회 홍보직원으로 근무할 때 수집한 각종 스포츠 사진과 용품들이 식당에 놓여있다.
대한체육회 홍보직원으로 근무할 때 수집한 각종 스포츠 사진과 용품들이 식당에 놓여있다.


개인보다 조직을 위한 삶

그는 정년 전까지는 개인보다 조직을 위해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인 대한체육회가 한국엘리트체육을 전담 지원하는 스포츠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자신이나 가정보다는 일이 더 우선이었다. 그가 처음 대한체육회에 발을 디딘 1986년은 한국체육이 본격적으로 비상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시안게임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서울에서 열렸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다. 한국은 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종합 2위를 차지했으며, 88서울올림픽에선 종합 4위에 올랐다. 홍보 담당이던 그는 한국체육의 경쟁력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비롯해 모든 이들이 하나라도 더 보탬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선수들은 성적으로 보답했고, 뒤에서 지원하는 우리들은 변함없는 지원과 응원으로 맡은 바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

특히 운동 선수 출신으로 체육 전문성을 갖고 있고,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많은 기자 선후배들을 위해 궃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신속하게 각종 국제대회 성적과 정보 등을 알려주었으며, 저녁에 서로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출입기자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그의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고향 강원도 후배들을 알뜰살뜰 챙겼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삼척 출신의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하자 다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황영조가 고향 후배라는 사실에 아주 흡족해했던 것이다.

“영조와는 그 이후 공식적인 자리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이 만났다. 강원도가 다른 지자체에 비해 여건이 좋지 않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영조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나와 한국엘리트 스포츠에 이바지 하는 것에 매우 만족했다.”

고향 사랑이 두터운 그는 대한체육회 퇴직 이후 파주 지역 강원도 출신 모임 회장을 맡고 있고, 출신 학교 초중고 회장도 지낸바 있다. 식당 이름에 장수대를 쓰게 된 것은 주 메뉴의 소재인 황태 주산지인 강원도 용대리 인근에 있는 설악산 봉우리 명칭에서 착안했다. 그가 얼마나 고향 강원도를 애지중지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파주 대박집 장수대 황태 해장국 간판. 자전거 두 대가 걸려있는게 이채롭다.
파주 대박집 장수대 황태 해장국 간판. 자전거 두 대가 걸려있는게 이채롭다.


인생 2막, 일은 즐거워

그가 대한체육회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그의 아내는 식당 부업으로 가정을 뒷바라질 했다. 아내는 2005년 한국식 바비큐 식당 ‘옛골 토성’ 체인점을 고양시 명지병원 인근에 차려 한때 장사를 잘 했다. 하지만 3년간 잘 나가다 같은 체인점이 근처에 생기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영업이 부진해지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조직을 위해 쉼없이 달리다 보니 가정 일에 소홀히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내가 식당 운영에 고전하는 것을 보면서 퇴근 이후와 주말 등을 이용해 주방과 홀 서빙 일을 맡아서 했다. 악전 고투하던 옛골토성 체인점을 큰 손해를 보고 정리한 뒤 없는 돈을 끌어 모아 파주 출판단지에 500평 땅을 장만해 황태 해장국 식당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생 고생하며 운영해오다 맛이 소문이 나면서 지난 수년전부터는 인기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

그는 2019년 퇴직이후 두 팔을 걷어 붙이고 주방장으로 나섰다. 설악산 용대리 덕장에서 가장 물건이 좋은 황태를 고정적으로 공급받으며 맛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대한체육회 직원 시절에도 각국에서 개최된 국제대회 등에 참가하며 현지 음식과 맛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우리의 전통 음식인 황태를 소재로 해 깊은 맛이 나는 해장국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김태형 대표와 아내가 황태를 작두로 썰고 있다.
김태형 대표와 아내가 황태를 작두로 썰고 있다.

“황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머리부터 꼬리, 껍질까지 모두 먹는다. 오랫동안 푹 고아서 뽀얗고 진한 맛을 내는 해장국을 만들어 내는데 오련 시간이 걸렸다. 대한체육회 시절 각국 음식에 관심을 가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황태를 손질하고 자르는 일은 그와 아내가 둘이서만 직접 한다. 아내가 넙쩔하게 손질한 황태를 작두에 밀어넣으면 그가 리듬에 맞춰기라도 한 듯 척척 썰어낸다. 두 사람이 황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부창부수’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그는 식당 종업원 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9명의 종업원을 위해 법정 근로 임금보다 훨씬 후안 대우를 해준다고 한다. 식당 운영을 아침과 점심만 하고, 저녁을 하지 않는 것도 종업원들과 자신을 건강과 휴식을 위해서였다. 그의 생각을 이해한 종업원들은 특별한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솔선수범해서 일하는 것에 대해 아주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고 한다.

“요즘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인생 2막이지만 열정, 희열을 갖고 일한다. 일을 하니까 더 건강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주위에 은퇴자들이 많은데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은퇴 이후 생활도 그 이전에 못지않게 의미있는 삶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개인 음악실에 스포츠 사진과 용품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개인 음악실에 스포츠 사진과 용품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색다른 취미 생활

그는 현재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아직까지도 현역 시절 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의미있는 일을 한다. 재능 기부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스포츠 역사를 정리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오로지 일만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그는 일 못지않게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식당 건너편 방에 드럼 세트, 노래방 시설을 들여놓아 나름의 ‘개인 음악실’을 수년전 꾸렸다. 친구나 지인들이 찾아오면 영업 시간 이후 호젓하게 이 방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드럼을 치며 즐긴다.

애마 할리데이비슨 바이크.
애마 할리데이비슨 바이크.


수년 전 ‘애마’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중고로 구입한 것도 재미있는 삶을 즐겨보자는 생각에서다. 3천여만원 들여 구입한 할리를 타고, 시간이 나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향해 떠난다. 즐겨 다니는 구간은 전곡, 화천, 청평, 가평 등이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할리를 몰고 가면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 인생을 사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다른 은퇴자들도 나처럼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

인생 60이후 새로운 삶을 찾은 그를 보면서 장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쇼!이슈

마니아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