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사진은 1980년 9월 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11123104954065795e8e9410872112161531.jpg&nmt=19)
"당신. 아직까지 근무하네. 대표선수들의 건강 상태를 잘 챙기고 잘 먹이고 잘 재워야 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오진학 당시 태릉선수촌 훈련 부장을 보고 한 말이었다. 오진학 씨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태릉선수촌을 가장 많이 들렀던 분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얼마나 많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한 지 셋 수가 없을 정도였다. 수행원과 경호원 몇 명만을 동행해 기습적으로 들렀던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90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는 한국체육사에서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준비했으며 야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를 태동시킨 주역으로 평가를 받는다.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그는 이듬 해 대통령에 오르며 1981년 당시 서독(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이 일본의 나고야를 꺾고 1988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5공 정권은 이듬해 3월 올림픽 주무 부처로 체육부를 신설하고 서울올림픽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서울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국가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높게 평가받았다. 원래 서울올림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총격에 의해 타계하기 전 유치를 준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 받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울올림픽은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참가하는 ‘동서 화합’의 장으로서 역대 최대참가규모로 성공리에 치렀다.
대통령 임기가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초에 끝나 직접 서울올림픽을 치르지는 못했지만 그가 서울올림픽에 기여한 것은 세계사적인 일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야구, 축구 등 한국의 프로스포츠 태동에도 결정적으로 힘을 보탰다. 태생적으로 정통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스포츠를 국가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과감하게 추진했다. 프로스포츠를 출범시킨 것도 이런 이유였다

1982년 고교야구의 인기에 편승해 프로야구가 첫 발을 내딛는데 앞장섰다. 당시 전두환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은 당시 이용일, 이호헌 등 야구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프로야구를 급조토록 지시, 불과 수개월내에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전두환 정부는국내 재벌기업을 설득해 프로스포츠 팀 창단을 적극 유도했다. 그 결과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프로축구, 프로씨름 등이 잇달아 공식적으로 출발을 하게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체육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육사 생도시절 축구부 골키퍼로 뛰기도 했던 그는 군인 시절에도 축구, 복싱 등을 좋아했다.
1983년 6월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청소년축구팀이 4강 신화를 달성하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청소년축구팀은 개선직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으며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1985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김정남 감독의 축구국가대표팀이 1954년 스위스월드컵이후 32년만에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것을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는 체육을 가장 좋아했던 대통령이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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