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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59.일본행 프로1호 선동열, 일 마운드를 휘젓다

2021-02-18 06:12

선동열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국내 프로야구 출신 1호. 뛰어난 활약으로 일본 프로야구계의 문을 활짝 열엇다. 한일슈퍼게임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희망했던 요미우리로는 가지 못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59.일본행 프로1호 선동열, 일 마운드를 휘젓다


선동열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슈퍼게임에서 일본 최고타자들을 상대로 5연속 탈삼진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프로야구 최고타자였던 오치아이는 ‘어떻게 저런 공을 던질 수 있지. 칠 수 없는 공’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명을 상대한 20여개의 공. 그것으로 충분했다. 충격에 가까운 강한 첫 인상이었다. 일본 구단들은 경쟁적으로 스카우트전에 덤벼들었으나 결론은 주니치 드래곤즈였다.

한일슈퍼게임 주최사였던 주니치는 선동열을 입도선매했다. 박건배 해태 구단주와 일찌감치 입을 맞추었다. 만약 선동열을 내보낸다면 그건 주니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태는 처음 전력상실 등을 우려, 선동열의 일본행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에 밀려 결국 선동열의 일본행을 추진했다. 요미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조건 등 모든 면에서 주니치 드래곤즈보다 좋았다.

해태 구단관계자와 선동열도 요미우리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불발. 그 누구도 구단주가 미리 정한 약속을 뒤집을 순 없었다. 구단관계자는 요미우리라면 구단주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했으나 역시 아니었다.

매우 아쉬운 일이었지만 선동열로선 일단 일본 프로에 뛰어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했기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서선 보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국내 마운드에서 해태의 6회 우승(1986, 1987, 1988, 1989, 1991, 1993)을 이끈 선동열은 화려한 개인 기록(통산방어율 1.20에 0점대 3차례로 방어율왕 8회, 다승왕 4회, 투수 3관왕 4회, 리그 MVP 3회, 골든글러브 6회, 한 경기 최다 탈삼진 18, 한 시즌 최다 완봉승 8회, 최다투구이닝 무피홈런 319이닝, 롯데전 20연승)과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의 성적을 안고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역할은 해태에서의 마지막처럼 구원 투수였다. 그래서 주니치에선 그를 ‘나고야의 수호신’이라고 불렀고 그의 성을 따 ‘나고야의 태양(선-SUN)이라고도 했다. 선동열은 한자 이름을 한글 표기 그대로 읽은 첫 번째 한국인 사례였다.

일본에서의 첫 해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을 확실히 하고 맞이한 1997년 두 번째 시즌에서 38세이브를 기록, 세이브 공동 1위(구원 2위)를 하며 주니치의 뒷문을 확실하게 책임졌다.

방어율 0.76으로 그가 세이브에 실패한 것은 단 한번밖에 없었다. 98년엔 방어율 0.86에 3승 29세이브를 올렸고 99년엔 1승2패에 28세이브를 작성했다.

선동열이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그는 1999시즌 주니치의 리그 우승을 함께 한 후 11월 22일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일본에서의 통산 성적은 162경기 10승 4패 98세이브였다.

선동열, 조성민이 테이프를 끊은 일본 프로야구 진출은 이후 러시를 이루었다. 1998년 이종범과 이상훈이 주니치에 입단했고 2001년에는 구대성이 오릭스로 향하는 등 투수군에서 정민철, 정민태, 임창용, 오승환, 이혜천 타자군에서 이승엽, 이병규, 김태균, 이범호, 이대호가 뒤를 이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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