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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 소년, 허훈

2020-04-20 16:55

2019년 11월 허훈의 경기장을 찾은 허재 전 감독.  [KBL 제공]
2019년 11월 허훈의 경기장을 찾은 허재 전 감독. [KBL 제공]
1994-1995 농구대잔치 MVP 수상자 허재(왼쪽) 전 감독과 정은순 KBS N 해설위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4-1995 농구대잔치 MVP 수상자 허재(왼쪽) 전 감독과 정은순 KBS N 해설위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안녕하세요.’

형과 함께 온 소년이 현관 앞에서 인사를 했다. 잘 생기고 귀티가 나는 아이였다. 표정도 아주 밝았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인 소년은 2살 위인 형과 같이 기자의 집을 찾았다. 기자의 둘째 아들과 형이 같은 초등학교 반 친구라 형에 이끌려 놀러왔던 것이다.

이미 그들이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을 집 사람을 통해 들었던 터였다. “니네들이 허재 감독 아들이구나. 잘 놀다 가”하며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둘을 향해 말했다. 이내 둘은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벌써 18년 정도가 흘렀던 것 같다. 20일 프로농구 부산 KT의 허훈(25)이 2019-2020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릴 적 그 소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조그만 체격이었지만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며 아버지의 모습과 많이 닮았던 게 처음 본 인상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자와 허재 감독 가족은 분당에서 서로 이웃한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아들들이 서로 친구사이로 두 집을 오고 갈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기자와 허재 감독과는 농구 담당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나 가족들이 간간히 식사를 하기도 했다. 허재 부인은 기자의 둘째 아들을 ‘신문사집 아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아내를 통해 들었다.

허재 아들 둘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형 허웅이 초등학교 교내 단축 마라톤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며 우승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단축 마라톤에서 우승한 허웅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허재 감독에게 자랑하자 “그 정도 갖고 뭘 그래. 앞으로 니가 해야할 일은 너무 많아”라는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기자의 아들이 전해주었다.


허훈은 형 허웅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달한 모습이었다. 형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학교 운동장과 공원 등에서 운동을 하고 놀기도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형 친구들에게 “그거 어떻게 하는거야, 형”하며 웃음을 잊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성격이 좋은 애였다는게 기자 아들의 말이었다.

기자의 아들이 6학년에 다니던 어느 날, 허재 감독네가 서울 논현동으로 이사를 갔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두 아들을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키기 위해 아버지의 모교가 있는 서울 용산중고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옮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들로 인연이 된 관계는 이걸로 사실상 끝났다.

허훈과 허웅 형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다 . 한국농구에서 몇 십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매직 맨’ 허재 감독의 피가 그대로 아들들에게 대물림 됨을 보여주었다. 이후 연세대 시절 두 형제를 농구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자가 대한농구협회 홍보이사를 맡았던 2015년 대학생 국제농구대회에서 연세대 선수였던 둘을 보게됐다. 결승에서 고려대와 접전을 치렀던 둘을 경기 후 만났으나 그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너무 어릴 적 만났고, 그 후 운동에 집중하느랴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터였을 것이다.

농구인들로부터 허훈이의 농구재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자주 들었다. 가까이서 본 허훈은 아버지의 전성기 때 모습을 점차 닮아가고 있었다. 용산고와 연세대를 거친 허훈은 2017년 전체 드래프트 1순위로 부산 KT에 지명돼 올해 세 시즌을 소화했다.

허재 감독과 DB에서 뛰는 허웅 등과 함께 ‘농구 가족’의 막내인 허훈은 프로 정규리그 MVP를 아버지나 형보다 먼저 받게 됐다. 허재 감독은 1997-1998시즌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으나 정규리그 MVP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프로 출범 이전인 농구대잔치 시절 1991-1992시즌과 1994-1995시즌에 대회 MVP에 선정된 바 있었다. 아직 정규리그나 플레이오프 MVP 수상경력이 없는 허웅은 이번 시즌 인기상을 받았다.

마침내 농구 가족을 빛내며 한국 최고의 선수로 탄생하던 날, 어릴 적 그 소년의 모습을 다시한번 떠올려본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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