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회 EBS 국제다큐영화제(8월 24~30일) 경쟁부문에 '티타임'(2014년 작)을 출품한 칠레 출신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이 지난 28일 기자와 만나서 한 말이다.
'티타임'은 6명(테레사, 알리샤, 헤마, 앙헬리카, 히메나, 이네스)의 할머니들이 고등학교 졸업 이후 60년 넘게 매달 이어온 차 마시는 모임을 5년에 걸쳐 관찰자적 시점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화려한 색감의 음식을 클로우즈업한 화면 덕분에 관객들은 할머니들과 함께 티테이블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대화 자체보다는 친구들이 보여주는 반응에 집중한 촬영기법은 등장인물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
알베르디 감독은 "고교시절 처음 만든 단편영화 상영회에 저의 가장 큰 팬인 친할머니를 초청했는데 '친구들과 티타임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셨다. 당시엔 이해가 안 갔지만 그들에게 티타임은 각자의 삶에 중요한 월례행사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저 또한 할머니들과 친밀하게 지냈다. 60년을 함께 한 이들의 우정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다큐 제작 동기를 밝혔다.
애초 제작기간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이들의 마지막 티타임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년 째에 촬영을 접었다. "그때가 마지막 티타임이었죠. 친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친구들은 '멤버 한 명이 없는 상황에서 티타임을 이어가는 건 의미가 없다'며 티타임을 중단했어요."

이 다큐로 인해 할머니들의 황혼기 삶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거나 언론매체에 노출되는 경험도 했죠. 할머니들 스스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것에 놀라워 하셨어요."
티타임이 지속될수록 투병 등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멤버들이 늘어난다. 다큐에는 친구들의 부재를 허전해하고, 자신들의 모임이 작아지는 것에 불안해 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역설적으로 티타임은 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황혼기의 우정은 사춘기의 우정과는 또 달라요.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 출가시키고 처한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에 황혼기 친구들과는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누워계실 때 그러셨죠. '티타임'을 통해 만난 친구들의 우정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다큐에서 먼저 떠난 테레사는 친구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나는 조용히 그냥 강 건너편으로 간 거야. 우리가 아름답게 나눴던 삶도 그대로 남아 있어. 슬퍼하지도, 격식 차리지도 마. 예전하고 똑같이 내 얘기를 해줘. 우스운 이야기를 하며 똑같이 웃어줘.'
알베르디 감독 자신에게도 '티타임'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손녀로서 친할머니를 읽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친할머니의 친구들 덕분에 '가족의 죽음은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이해하게 됐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할머니 상을 당한 뒤 몇 개월 후 엄마마저 돌아가셨다. 하지만 두 분 모두와 친밀하게 지냈던 할머니 친구들 덕분에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두 분에 대한) 얘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할머니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건 저한테 축복이었다"고 웃었다. 그는 "바쁜 일상 탓에 친구들과는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지 못하지만 가족과는 매주 토요일 점심을 함께 한다"고 했다.
알베르디 감독은 30일 오후 1시 '티타임'(아트하우스 모모 2관) 상영 후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CBS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moon03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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