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블루룸'을 접한 작가 김영하의 말이다.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 등으로 익숙한 김영하는 최근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압구정점에서 블루룸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 영화 감상평을 들려줬다.
작가 조르주 심농(1903~1989)의 소설에 원작을 둔 영화 블루룸은 학창시절 멀리서 서로를 지켜만 보던 줄리앙과 에스더가, 각자 결혼한 뒤 다시 재회하면서 빠져드는 육체적 탐닉을 그렸다.
영화는 시간이 흘러 줄리앙이 살인죄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둘이 사랑을 나누던 비밀의 방에서 벌어진 일들을 추리해 나가는 형식을 띠었다.
김영하는 "'원초적 본능'(1992)이 팜프파탈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런 요소들을 잔잔하게 표현해서 더 무서웠다고 생각한다"며 "극중 에스더가 하는 말들, 즉 우리가 사랑할 때 주고받는 말들이 다 암시를 주면서 미묘한 무언가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중의적 대사는 문학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다중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들을 갖고 게임을 벌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공간에 대해서는 "화면으로 쭈욱 보여지는 집이 굉장히 크고 잘 지어졌지만 공허하다"며 "줄리앙의 집을 보면 천장도 높고, 커튼이나 블라인드처럼 안정된 장치 없이 투명하게 오픈 돼 있어 안정감이 들지 않는다. 공간을 미루어볼 때 거의 부부관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공허 자체가 귀하다"며 "영화에서는 공허가 안 좋은 분위기로 표현되지만, (고독과 적막함을 누려봤으면 하는) 우리가 볼 때는 찾기 어려운 귀한 감정으로 보일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영하는 영화 블루룸과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연결짓기도 했다.
그는 "요즘 소포클레스에 관심이 많아서 그 부분과 연결지어 영화를 봤는데, 줄리앙도 모든 것을 가졌지만 순식간에 몰락한다는 점이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며 "한 인간의 자만에 대한 경고를 그린 그리스의 이야기처럼 블루룸은 쾌락만 누리는 줄리앙을 통해, 결국 그것이 돌아와 복수를 당한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인 내용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줄리앙에게서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현대 중년 남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극중 '스스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는 줄리앙의 대사처럼 그는 더 큰 쾌감을 찾는, 옳지 않은 쉬운 방법을 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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