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2(토)

골프

[김민호의 루키 다이어리](1)먼 길 돌아온 투어 프로의 길

2015-04-29 09:59

올 시즌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 새롭게 합류한 김민호(26.MFS)의 투어 일기를 연재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가 ‘루키’로서 느낀 점을 가감 없이 전달할 계획입니다. 새내기로서 어려운 점도 있을 거고,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가며 희열도 느낄 겁니다. 골프는 인생이라고 하죠. 김민호에게는 새로운 골프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그의 인생 얘기를 함께 들으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편집자 주]
▲김민호.사진
▲김민호.사진

내 이름은 김민호. 키 186cm. 올해 26세. 16세 때 챌린지 투어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 지난해 한국프로골프(KPGA) 정회원 선발전 수석 합격.

나에 대해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잡지에도 한두 번 소개되고,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하면 내 이름 석 자가 뜨기는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가족, 연습장 식구들, 그리고 친구들. 뭐 이 정도다. 그래 맞다. 나는 ‘루키’다. 스물여섯에 루키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루키다. 올해 처음으로 KPGA 투어에 뛴다.

지난주 개막전인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에서 첫 데뷔전을 가졌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성적일 게다. 그게 모든 걸 말하는 세상이니까. 다행히 컷은 통과했다. 그러나 최종 성적은 컷 통과자 70명 중 69위를 했다. 4라운드 합계 14오버파를 쳤다.

그래도 내가 자랑스럽다. 골프채를 놓고 있다 지난해 6년 만에 다시 클럽을 잡았고, 정회원 선발전 수석 합격, 시드전에서는 연장전 끝에 2위로 통과한 나다. 올해 투어에 뛰게 되는 것만도 기적이다.
▲김민호가24일열린KPGA투어동부화재프로미오픈2라운드4번홀에서아이언티샷을하고있다.사진
▲김민호가24일열린KPGA투어동부화재프로미오픈2라운드4번홀에서아이언티샷을하고있다.사진

집안 사정으로 골프 중단…전단지 돌리며 사업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던 나는 2008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골프를 포기해야 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다. 처음엔 화가 났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원망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는 내 힘으로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할 줄 아는 건 역시 레슨이었다. 따로 창업비용도 들어가지 않고 성실하게만 하면 그래도 돈을 만질 수 있다고 들어서였다. 레슨 프로로 5개월 정도 활동했을 무렵 스크린골프연습장을 오픈했다. 당시에도 집안 사정이 어려웠지만 부모님은 내 의견을 듣더니 창업을 선뜻 도와주셨다. 건물주는 패밀리레스토랑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가 설득했다. 젊은 놈이 찾아와 사업계획서라며 종이 몇 장 드밀면서 사정을 하니 ‘이 놈 봐라.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라는 심정이었을 거다.

와인바와 접목한 스크린골프연습장으로 나름 콘셉트를 잡았지만 사실 막막했다. 카운터에 가만히 앉아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더구나 어떤 돈으로 창업한 건가. 전단지를 만들어 새벽에 인근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나기도 수 차례였다. 자동차 안에서 쪽잠을 청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노력의 결과 손님들이 찾기 시작했고, 사업도 번창했다. 월 평균 수입이 1500만원 안팎이었으니 20대 초반에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그 후 나는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댔다. 보석과 시계 감정을 하면서 쇼핑몰도 만들었고, 의류 판매도 했다.

하지만 신은 내게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부모님의 사업이 또 다시 힘들어진 것이다. 모든 걸 포기해야 했다. 절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때리는 첫 번째 매는 아무 생각 없이 맞을 수 있었지만 두 번째 매는 두렵다. 당시 내 심정이 그랬다.

▲버스를두번갈아타고대회장까지응원온고등학생제자와저녁식사도중한컷.
▲버스를두번갈아타고대회장까지응원온고등학생제자와저녁식사도중한컷.

아내의 격려에 올해 드디어 잊고 있던 꿈 찾아

주머니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스무 살 내 인생의 첫 직업이었던 레슨 프로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올해 드디어 원래 꿈이었던 투어 프로가 됐다. 2013년 결혼한 아내의 힘이 컸다. “다시 해 봐”라는 그 한 마디가 잊고 있던 꿈을 깨웠다.

어쨌든 이제 첫 시합을 치렀다. 1부 투어는 막연히 코스 상태가 엄청 좋을 줄 알았지만 2부나 3부 투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린 주변이 까다로웠다. 앞으로 그린 주변 쇼트 게임 능력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내 플레이를 하지 못한 거다. ‘쫄지 말자’고 다짐했고, 쫄지 않은 것 같은데 2라운드까지 굉장히 보수적인 플레이를 했다. 그건 내 골프가 아니었다. 난 원래 굉장히 공격적인데 말이다. 사단은 3라운드 3번홀에서 났다. 3번 우드 티샷 두 방이 OB(아웃오브바운즈)가 됐다. 세 번째 티샷도 산에 박혀 레이업을 해야 했다. 파5 홀에서 5오버파, 즉 ‘양파’를 했다. 티샷 전부터 불안하긴 했다. 스푼의 라이각 조정이 안 된 데다 안전과 공격 둘 중 확실하게 하나의 전략을 선택해야 했는데 어중간하게 친 것이다.
▲첫데뷔전을축하한다며연습장식구들이대회장을찾았다.그들에게좋은성적으로보답해야했는데첫대회의부담감때문에그러지못해미안하다.
▲첫데뷔전을축하한다며연습장식구들이대회장을찾았다.그들에게좋은성적으로보답해야했는데첫대회의부담감때문에그러지못해미안하다.

파5 홀서 ‘OB 두 방’ 스코어 와르르

마지막 날에도 같은 홀에서 첫 번째 티샷이 또 OB 구역으로 날아갔다. 두 번째 티샷 때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드라이버를 들었다. 볼은 원하는 지점으로 날아갔다. 이후 스푼으로 쳐서 그린 뒤편까지 보냈다. ‘이게 바로 내 스타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지만 속은 시원했다. ‘내 골프를 하는 것’. 첫 시합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성적보다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응원을 와준 연습장 식구들에게 미안하다는 거다. 특히 제자 한 녀석에게 더욱 그렇다. 고등학생인 녀석은 3라운드 때 경기도 광주의 파3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한 뒤 버스를 타고 강남고속터미널에 와서 그곳에서 다시 포천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혼자서 그 먼 길을 온 녀석에게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3라운드 후 저녁으로 백숙을 사 먹이고, 숙소에서 잠도 재워주며 추억을 쌓았으니 내 나름 위안이다.

참, 투어 프로니 결산을 빼먹으면 안 되겠다. 더구나 첫 시합인데. 회사원으로 치면 첫 월급인 셈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비용으로 총 110만원을 썼다. 첫날과 둘째 날은 콘도에서 자고, 나머지 이틀은 모텔에서 자 비용이 적게 들었다. 캐디피 역시 친구가 백을 메 조금 싸게 했다. 상금은 133만원. 나의 일주일 인건비를 포함시키면 손해지만 컷을 통과해 그나마 그거라도 벌었으니 다행이다. 각종 매체에 비치는 투어 프로는 화려하지만 모든 선수가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어렵게 꿈을 키워가는 선수들이 더 많다.

스물여섯 짧은 인생에 새로운 인생의 막이 올랐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리=김세영 기자(k0121@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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