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사브르, 플뢰레와 남자 에페, 사브르가 개인과 단체전을 휩쓸며 금빛 레이스를 주도했다. 뿐만이 아니다. 값진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도 보탰다. 라이벌 중국(금 3개, 은 4개, 동 5개)을 제치고 넉넉한 종합 우승을 거뒀다.
4년 전 광저우 대회(금 7개, 은 2개, 동 5개)의 역대 최고 성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두 대회 연속 중국은 한국의 거침없는 기세에 밀렸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아시아 최강으로 다시금 우뚝 선 펜싱 코리아.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심재성 대표팀 총감독에게 살짝 들어봤다. 여자 에페 코치인 그는 6개 종목 선수단 총괄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감기 몸살 투혼도 불사" 열정은 기본
펜싱 종목 최종일인 25일. 고양 실내체육관에서 모든 종목을 마치고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심 감독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마치 경기를 뛴 선수처럼 뻘뻘 땀을 흘렸다.
심 감독은 신아람, 최인정(이상 계룡시청), 김명선(강원도청), 최은숙(광주 서구청) 등과 함께 여자 에페 단체전 결승전을 치렀다. 그러나 단체전 세계 2위이자 이번 대회 최강인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나온 심 감독은 "3일 전부터 감기 몸살에 걸렸다"면서 "가만히 있어도 열이 나는데 작전 지시를 하고 나니 내가 경기를 한 것 같다"고 웃었다. 펜싱 강국의 비결을 말하기도 전에 일단 하나는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수단의 열정과 의지는 말하지 않아도 절로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

이에 심 감독은 주심의 제지에도 강력한 항의로 비디오 판독을 이끌어냈다. 30여 분의 판독에도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지만 유창한 외국어로 규정을 따져가며 냉철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심 감독은 신아람의 눈물과 함께 깊은 감동을 남겼다.
▲"긴가민가는 없다" 큰 물에서 놀았던 자신감
피나는 노력과 색다른 훈련 방법 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선수들은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오후 9시까지 쉬지 않고 땀을 흘렸다"고 했다. 여기에 빠른 스텝과 손 동작을 위해 댄스 음악에 맞춰 리듬감을 익히는 독특한 훈련까지 소화했다.
심 감독은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결을 첫 손에 꼽았다. 바로 '확신'이다. 4년 전 광저우 때는 긴가민가 했던 마음가짐이 인천 대회를 앞두고는 100%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광저우 때만 해도 '우리가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미심쩍어 하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고 했다. 당시 아시아 최강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2006년 도하 대회에서 금메달 7개를 쓸어가며 4개였던 한국을 제친 바 있다. 1990년 베이징 대회에 이어 최다 금메달이었다.

광저우 대회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은 국제대회 참가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월드컵과 그랑프리 등 대부분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 경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거의 전 대회 출전이 이뤄졌다. 2009년부터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협회 수장을 맡으면서 지원이 풍족해진 까닭이다.
심 감독은 "국제대회 참가하느냐 마느냐가 천지차이"라면서 "정상급 선수들과 맞서 점점 우승을 하니까 마음 속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큰 물에서 논 담대함이 빛을 발한 것이다.
▲종목 간 선의의 경쟁…"中-日처럼 세대교체 서둘러야"
대표팀 내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 의식도 빼놓을 수 없다. 에페와 사브르, 플뢰레까지 한 종목이 잘 하면 다른 종목들이 지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심 감독은 "대회 전부터 각 종목 선수와 코치들이 '다른 데는 금이 나오는데 우리가 빠지면 안 된다'는 일종의 위기 의식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심 감독의 종목인 여자 에페는 금메달이 나오지 못했다. 개인전 신아람에 이어 단체전도 은메달을 따냈다. 남자 플뢰레 역시 허준(로러스)의 은메달에 이어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심 감독은 "하필이면 마지막 날 여자 에페와 남자 플뢰레가 열렸다"면서 "다른 종목이었다면 금메달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과 함께 멋쩍은 웃음을 드러냈다.
두터운 선수층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대회 한국은 결승 집안 대결이 세 차례나 나왔다. 특히 펜싱 최고 스타 남현희(성남시청)와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지연(익산시청)은 각각 여자 플뢰레와 사브르에서 전희숙(서울시청)과 이라진(인천 중구청)에 밀렸다. 어쩌면 세계 극강 양궁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심 감독은 "일본은 벌써 2020년 도쿄올림픽을 보고 어린 선수들을 냈다"면서 "중국도 어린 선수들이 많더라"고 전제했다. 세대교체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 심 감독은 "우리 선수들 중에 전성기에 이르거나 지난 선수들이 있다"면서 "기량과 체력을 꾸준히 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착륙을 준비할 선수들의 뒤를 이을 재목들을 발굴해내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극강으로 자리매김한 한국 펜싱. 만족은 없다.인천=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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