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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10전 전승 상대에게 첫 게임을 내준 밤 뇌는 무엇을 바꿨나...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의 뇌과학

2026-10-26 08:41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16-21. 10월25일(한국시간) 프랑스오픈 결승 1게임이 끝났을 때 전광판에 남은 숫자다. 앞선 쪽은 세계 11위 푸살라 신두(인도), 맞은편에는 올해 65번 이기고 딱 한 번 진 안세영(삼성생명)이 있었다. 신두는 그때까지 안세영과 열 번 맞붙어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2게임 21-11, 3게임 21-12. 2-1 역전승으로 프랑스오픈 3연패, 시즌 10승, 세계선수권부터 이어진 다섯 개 대회 연속 우승이다. 이날 승리로 신두와의 상대 전적은 11전 전승이 됐다. 3월 전영오픈 결승에서 왕즈이에게 진 뒤로는 50연승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숫자만 보면 또 하나의 대기록이다. 그러나 이 칼럼이 붙잡고 싶은 것은 21-11이 아니라 16-21이다.

일주일 전 덴마크오픈 결승에서도 안세영은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상대로 첫 게임을 21-23으로 내줬다가 뒤집었다. 유럽 두 대회 결승에서 첫 게임은 모두 상대의 것이었다. 이긴 시간보다 질 뻔한 시간이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먼저 열 번 이겨 본 상대를 만날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보자. 뇌는 그 상대의 '완성된 지도'를 만들어 둔다. 셔틀콕을 어디로 보낼지, 언제 힘이 빠질지가 이미 그려져 있다. 덕분에 선수는 생각하지 않고도 몸을 움직인다. 아주 효율적이다. 문제는 이 지도가 어제의 상대를 그린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의 상대가 달라지는 순간 지도는 조용히 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길 때가 더 위험하다. 이긴 기억이 쌓일수록 뇌는 '이번에도 같겠지'라고 읽고 틀렸다는 신호를 늦게 받아들인다. 전승 기록은 자신감이면서 동시에 고정된 확신이다. 보도에 따르면 안세영은 1게임 11-11 동점에서 범실과 판단 실수가 겹치며 11-15로 밀렸고, 신두의 높은 타점을 살린 공격에 끝내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오래된 지도가 현실과 어긋났다는 경보가 코트 위에서 울린 셈이다. 아시안게임 뒤 곧바로 이어진 유럽 2연전을 치른 몸이기도 했다. 몸이 지치면 판단의 사령탑은 에너지를 아끼려고 익숙한 길로 돌아가려 한다. 지도를 고쳐 그리기 가장 어려운 상태에서 지도를 고쳐 그려야 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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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필요한 능력이 인지적 유연성이다. 쉽게 말해 지도를 찢고 새 지도를 그리는 속도다. 이 일을 맡는 곳이 전전두엽, 곧 판단의 사령탑이다. 사령탑은 '어제는 이랬다'는 기억을 붙들지 않고 '지금은 이렇다'는 정보로 작전판을 갈아 끼운다. 경보가 울린 뒤 무엇을 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지도를 고집하는 뇌는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부딪치고, 유연한 뇌는 방식을 바꾼다.

결과를 놓고 짐작해 볼 수 있다. 2게임에서 안세영은 수비 집중력을 끌어올려 상대 공격을 받아 내는 데서 다시 시작했고, 연속 득점으로 13-7까지 달아났다. 3게임에서는 5-8로 뒤진 뒤 연속 4득점으로 9-8을 만들었고, 9-9에서 다시 6점을 내리 쌓았다. 힘을 더 쓴 것이 아니라 읽는 법을 고친 흔적이다. 물론 두 번의 역전이 같은 이유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첫 게임에 들고 나선 지도를 2게임에서 고쳐 쓰는 장면이 연달아 나왔다는 것은 확인된다. 전영오픈에서 한 번 진 뒤 50연승을 쌓은 선수가 그 승수만큼 지도를 믿었다면 이런 역전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흔히 '상대를 미리 많이 알아 두라'는 뜻으로 읽는다. 뇌과학으로 다시 읽으면 뜻이 조금 달라진다. 안다고 믿는 순간 지피는 멈추고, 지피는 한 번 끝내는 일이 아니라 매 게임 다시 하는 일이다. 11전 전승은 지피의 완성이 아니라 어제까지 지피를 해 온 기록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코트 밖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열 번 성사시킨 거래처가 열한 번째에는 다른 이유로 고개를 젓는다. 늘 통하던 말투가 사춘기 아이 앞에서는 처음으로 먹히지 않는다. 매년 하던 대로 한 일이 올해는 어긋난다. 그때 뇌에 울리는 경보는 불쾌하지만 고마운 신호다. '너의 지도가 낡았다'는 가장 정확한 안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우승에서 배울 것은 98.5%라는 승률이 아니라 나머지 1.5%가 오려는 순간 지도를 새로 그리는 속도다. 첫 게임을 내주고 점수판에서 밀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물론 이것은 타고난 재능만의 일이 아니다. 작전판을 바꾸는 훈련은 반복할수록 빨라진다.

당신에게도 열 번 이긴 상대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도 그 일도 오늘 역시 어제와 같을까.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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