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반 5분 김승규 골키퍼와 이기혁선수가 부딪히는 충돌 속에 멕시코 선수가 쉽게 공을 골문으로 차 넣었다. 멕시코는 이 한 번의 승리로 조 1위를 확정했고, 한국은 월드컵 본선 2차전 무승 기록을 또 늘렸다.
그리고 경기 시간 57분, 손흥민이 천천히 벤치로 걸어 나왔다. "왜 또 저 타이밍이야?" 패배가 확정된 뒤에도 가장 많이 따라붙은 질문은 바로 그 교체 시점이었다.
데자뷔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데자뷔보다 더 묘한 장면이었다. 일주일 전 체코전에서 손흥민은 경기 시간 60분에 교체됐다. 그날은 결과가 좋았다. 들어간 오현규가 역전골을 넣었다. 그런데 멕시코전엔 그보다 3분 더 일찍, 57분에 같은 전술이 반복되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 장면을 두고 날카로운 지적을 내놨다. 경기의 구체적인 상황이 체코전과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감독이 이전의 관성대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짜 문제를 볼이 공격진까지 전달되지 않는 구조, 즉 전술적 패턴 자체에서 찾았다.

여기서 뇌과학 얘기를 좀 해보자.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절전 모드'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에너지를 아끼는 데 진심인 기관이라고 해야겠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뇌가 매번 처음부터 계산기를 두드리기 싫어한다는 뜻이다.
한 번 효과를 봤던 방법이 있으면 뇌는 "이거 저번에 됐잖아, 또 쓰자"며 서랍에서 그대로 꺼내 쓰려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게 '아인슈텔룽 효과'다. 풀이하면 '정신적 고정관념의 함정' 정도가 되겠다. 체스 선수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떤 수가 한 번 통한 적이 있으면 그다음 판에서도 그 수가 최선인지 다시 따져보지 않고 손이 먼저 그 자리로 간다. 더 좋은 수가 바로 옆에 있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앞선 전문가들의 지적을 풀어보면 정확히 이 현상이다. "교체"라는 도구가 체코전에서 워낙 잘 들었기 때문에, 멕시코전에서 진짜 필요했던 건 "패스 경로 수정"이라는 전혀 다른 도구였는데도 뇌는 익숙한 서랍부터 열어버린 것이다. 문제의 종류가 바뀌었는데 해결의 종류는 바뀌지 않은 셈이다.

두 번째 토끼는 오지 않았고 밭은 잡초밭이 됐다. 한 번의 우연한 성공을 법칙이라 믿는 순간, 그다음엔 상황을 다시 살피는 일조차 생략하게 된다. 토끼가 다시 오지 않는 이유는 그 그루터기에 있지 않다. 밭을 갈지 않은 농부의 손에 있다.
물론 변명할 구석도 있다. 축구는 변수가 너무 많은 종목이라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들고 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같은 결정을 반복하려는 순간 "이게 정말 지금 문제에 맞는 해법인가, 아니면 그냥 손에 익은 도구를 꺼낸 건가"를 스스로 한 번은 되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비단 축구 감독만의 숙제는 아니다. 잘 먹혔던 회의 진행 방식, 예전에 통했던 협상 멘트, 한때 효과 봤던 육아 노하우 등 문제의 종류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늘 쓰던 도구부터 꺼내 들고 있는 건 아닐까.
남아공전이 아직 남아 있다. 이번엔 그루터기를 떠나 다시 밭을 갈 수 있을지, 우리는 또 한 번 채널을 고정하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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