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물에 무언가를 “덩크”하듯 처박는 모습과 닮아 자연스럽게 dunk라는 일상어가 농구 기술 명칭으로 전이됐다. 전 LA 레이커스 아나운서 칙 헌은 1960년대 같은 뜻으로 ‘슬램 덩크(slam dunk)’라는 말을 처음 사용해 유행시켰다. ‘slam은 세계 내리친다는 뜻이다. 1990년대 일본 농구만화 ‘슬램덩크’가 국내에 소개되며 슬램덩크는 한국농구팬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다. (본 코너 385회 ‘슬램덩크(Slam Dunk)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1970년대부터 덩크슛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72년 6월18일자 ‘"감투(敢闘)와 갈채(喝采)"’기사는 ‘〇…17일 장충체육관서열린 국민학교 농구,서울계성과 전북 완산의 대전은1m76㎝(㎝)라는 초 국민학교급 장신 6학년생선수 윤(윤(尹))프레데릭(12)군의활약으로 스탠드의 화제가됐다.그는 계성의 총득점72포인트중 자그마치 52점을혼자 올려 국민학교 바스켓볼 득점기록의 새 주인공이됐는데,장신을 이용한덩크슛(링위로부터 꽃아넣는 슛)과 골밑 포스트플레이로 만만치않은 솜씨를보였다.7살때 가족을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버린 아메리카 아버지의 기억이희미하다는 윤군은 행상끝에과로로쓰러진 병상의 어머니 윤영레(윤영예(尹英礼)·46)씨랑 다섯식구서 단간 삭월셋방살이를 하고있지만 학교성적도 퍽 좋고 특히 과학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기사에서 기자는 덩크슛이라는 외래어만으로는 독자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괄호 안에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덩크슛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개념이었고 농구 용어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덩크슛’은 번역이 필요한 신기술이었던 셈이다
북한에선 덩크 슛을 순우리말로 ‘꽂아넣기’라고 말한다. 덩크라는 영어 단어가 발음도 낯설고 의미도 직관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공을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넣는 동작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 기술의 이름보다 행위 자체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 표현이다.
이런 동작 중심 언어는 북한 스포츠 용어 전반에서 발견된다. 자유투를 ‘벌넣기’라 하고, 드리블을 ‘공치기’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포츠를 관람하는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기술을 추상화하기보다 몸의 움직임과 결과를 언어로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중계와 보도가 교육과 선전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북한 사회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본 코너 1647회 ‘북한 농구에서 ‘자유투’를 왜 ‘벌넣기’라고 말할까‘ 참조)
‘꽂아넣기’라는 표현에는 또 다른 뉘앙스도 담겨 있다. 미국 농구에서 덩크슛이 개인 기량과 쇼맨십의 상징이라면, 북한식 표현은 화려함보다 실천성과 결정력을 강조한다. 공을 ‘꽂아’ 넣는다는 말에는 주저함 없이 기회를 완성하는 힘, 확실한 득점이라는 의미가 앞선다. 개인의 묘기보다는 경기의 결과와 집단적 효율을 중시하는 시각이 언어에 배어 있는 셈이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결국 ‘덩크슛’과 ‘꽂아넣기’의 차이는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 언어가 기능해야 하는 방식,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나는 기술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북한 농구에서 꽂아넣기라는 말이 살아 있는 이유는, 그 사회가 스포츠를 말하는 방식이 여전히 몸과 행동, 그리고 결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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