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glove는 고대 독일어 ‘galōfô’에서 유래됐다. 독일어 접두사 ‘ga’는 집단을 의미하며, ‘lōfô’는 손바닥을 뜻한다. 고대 영어 ‘ glōf’와 중세 영어 ‘glove, glofe’를 거쳐 현대 영어로 바뀌었다. 19세기 후반 야구가 발전하면서 글러브는 겨울용·의례용 장갑에서 공을 잡기 위한 보호·도구 장갑
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야구 글러브는 “손을 덮어 공의 충격을 막는 장갑” 이라는 기존 개념의 기능적 특화로 발전했다.스포츠에선 야구, 복싱 등에서 글러브를 사용한다. (본 코너 1306회 ‘왜 ‘복싱 글러브’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글러브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의하면 조선일보 1925년 10월27일자 ‘7대(對)4로설욕(雪辱) 조명야구이회전(早明野球二回戰)’ 기사에서 ‘조군근본이포빙실삼루(早軍根本二匍氷室三壘)에 맹렬(猛烈)한 포구(匍球)를 송(送)하야 삼루(三壘)의 글러브를 탄(彈)한 안타(安打)에 이루(二壘)를 도(盜)하고 등본안타(藤本安打)에 빙실장구생환안전직격우단타(氷室長驅生還安田直擊右短打)에 등본삼루(藤本三壘)를 진(進)하자 산기우중간(山崎右中間)에 삼루타(三壘打)에 등본안전생환뇌목우직비안타(藤本安田生還瀨木又直飛安打)로 조대일거사점(早大一擧四點)을엇다 뇌목이도수원삼포(瀨木二盜水原三匍)에도(倒)할틈에 삼도(三盜)를 기(企)하고 정구직포(井口直匍)에 그치다’고 경기 상보를 전했다. 여기서 나오는 ‘글러브’는 오늘날 쓰는 의미와 같지만, 쓰임과 뉘앙스에는 당시의 언어 환경이 반영돼 있다.
북한 야구에선 글로브를 ‘’손덮개‘라고 말한다. 손덮개는 공을 잡기 위해 손에 씌우는 도구라는 기능을 직관적으로 설명한 말이다. 북한 매체는 “안마당지기는 손덮개를 끼고 날아드는 공을 받아냈다” 등으로 표현한다. 이는 내야수가 글러브로 날아가는 공을 잡았다는 의미이다. 손덮개라는 말은 북한 매체를 비롯 체육 규정·중계문에서 자주 등장한다
북한에서 각종 용어들은 외래어를 차용하지 않고, 누구나 의미를 즉각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다. 손덮개에는 북한 체육 용어의 특징인 외래어 배제, 기능 중심 명명, 대중적 직관성이 이 한 단어에 응축돼 있다. ‘외야수’를 ‘바깥마당지기’, ‘내야수’를 ‘안마당지기’라 부르는 방식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본 코너 1634회 ‘북한 야구에서 왜 ‘내야수(內野手)’를 ‘안마당지기’라고 말할까‘, 1635회 ‘북한 야구에선 왜 '외야수(外野手)'를 '바깥마당지기'라고 말할까’ 참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용어 체계가 결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한국 야구 기사에서도 ‘손덮개’ ‘공채’ 같은 표현이 쓰인 적이 있다. 북한의 야구 언어는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근대 초기에 형성된 조선어 야구 어휘를 제도적으로 고정·정비한 결과에 가깝다. 언어의 단절이 아니라, 다른 방향의 지속인 셈이다.
결국 문제는 장비가 아니라 언어에 있다. 우리는 왜 여전히 ‘글러브’라 부르고, 그들은 왜 끝까지 ‘손덮개’라 부를까. 이 작은 차이가 보여주는 것은, 스포츠조차 언어와 이념, 생활문화 속에서 서로 다르게 뿌리내린 한반도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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