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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43] 북한 야구에선 왜 ‘배트’를 ‘방망이’라고 말할까

2025-12-25 07:31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장에 나타난 북한 전력 분석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장에 나타난 북한 전력 분석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래어 ‘배트’는 영어 ‘bat’를 음차한 말이다. 야구나 소프트볼 등에서 공을 치는 방망이를 뜻한다. 원래 bat 어원은 두드리다는 의미인 라틴어 ‘battuere’에서 유래했으며, 프랑스어 ‘batte’를 거쳐 고대 영어 ‘bat’로 이어졌다. ‘치기’라는 동작에서 태어난 타격 도구 명칭이다. 19세기 중반,야구와 크리켓이 대중화되면서 bat은 점점 “공을 치는 전용 도구”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배트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2년 12월10일자 ‘조선일보사급각단체후원하(朝鮮日報社及各團體後援下)에 용장맹사(勇將猛士)의전투(戰鬪)’ 기사는 ‘량군의 선수들은 서로악수를 한후 즉시 경기를 시작하게되야 몬져 미국직업야구단이 수비를 하게되얏스며 우리의 전조선군은 빼ㅅ틩을 들고 나오게되얏다 쳐음으로 젼조선군의 샌터 마춘식군이 나스며「히트」를치자 수비에 능란한 미군측에셔는 즉시 하잇뽀ㄹ을 밧게되야 무참하게나 쳐음 갈긴뽀ㄹ이 져들의 수즁에 드러가자 마군은 아웃이되고 말앗다 그후에 박텬병군이 다시 홈으련을 게획하고 뻬쓰에 나왓스나 미군의 피쳐로 유명한 편낙크군의 능란한뽀ㄹ을갈기얏스나 산싱으로 그만죽게되얏다 이와갓치운리의 젼조선군들은 의긔를 분발하야 빼ㅅ틔ㅇ을들고싸오고자 하얏스나 한점도엇지못하고 노홈을 당하게되얏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국 프로야구단과 조선야구단 경기를 전한 내용이었는데, 배트로 휘두르는 것을 ‘빼ㅅ틔ㅇ’이라고 표기했다. 이 단어는 오늘날의 ‘배팅(batting)’을 옮겨 적은 초기 외래어 표기이다. (본 코너 1642회 ‘북한 야구에선 왜 '베이스'를 '진(陳)'이라 말할까’ 참조)

북한에선 배트를 ‘방망이’라고 부른다. 방망이는 세게 두드린다는 의미인 ‘방망’과 도구를 나타내는 명사형 접미사 ‘-이’가 결합한 말이다. 조선 후기 문헌과 구비어에서 방망이는 빨래를 두드리는 도구, 곡식을 찧는 막대, 몽둥이 모양의 타격 도구 등을 두루 가리켰다.

북한에서 쓰는 방망이라는 단어에는 기능 중심적 사고가 담겨 있다. 이 도구는 무엇보다 ‘치는’ 역할을 한다. 북한 체육 용어는 형태나 브랜드보다 기능과 동작을 우선한다. 배트라는 명칭이 물건의 외래적 정체성을 드러낸다면, 방망이는 행위 자체를 설명한다. 공을 치는 방망이, 치는 동작인 방망이질. 언어가 곧 동작 설명이 된다.


여기에는 식민지 경험과의 거리두기도 작용했다. 남한 야구 용어 상당수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래어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식민지 잔재로 인식했고, 야구 언어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배트’ 역시 정리 대상이 됐다. 방망이라는 말은 전통 생활어이자 비식민적 언어였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또 하나의 이유는 대중성이다. 북한에서 스포츠는 전문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집단적 교양 활동이다. 어린이와 노동자, 농민 누구나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다. 방망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다. 듣는 순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장면이 그려진다.

북한 체육 보도와 규정집에서는 “타자는 방망이를 정확히 틀어쥐고 공을 쳤다”, “방망이질이 날카로워 수비진을 흔들었다” 등으로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 체계로 굳어졌음을 보여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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