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딕슨 야구 용어사전에 따르면 ‘infielder’는 안을 뜻하는 ‘in’, 야구를 뜻하는 ‘field’,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야구 초창기에는 포지션 명칭이 매우 단순했다. 타자와 가까운 안쪽 지역은 ‘infield’, 그 보다 바깥지역은 ‘outfield’라고 불렀다. 각각 수비하는 사람들을 자연히 ‘infielder’, ‘outfielder’라고 명명했다. (본 코너 239회 ‘왜 ‘필드(Field)’를 야구장이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의하면 조선일보 1926년 1월5일자 ‘스코어로본세계야구선수권대회(世界野球選手權大會)’ 기사는 ‘세계야구선수권(世界野球選手權)이 롯되기는 구(一九)○삼년(三年)으로 년(今年)까지 십이회(二十二回)ㅅ재이다 핏스빡"군(軍)이"내쇼낼리그"를대표(代表)하야 계선수권대회(世界選手權大會)에출장(出塲)하야 뎃로이트"군(軍)을 승삼패(四勝三敗)의 전후격파(接戰後擊破)하야 승(優勝)한 것은 구(一九)○구년(九年)이엇다 후불행(後不幸)히 계선수권대회(世界選手權大會)에 장(出場)할 격(資格)을엇지못하엿다가 륙년(十六年)만에 계선수권대회(世界選手權大會)에 장(出塲)하야 와싱톤"군(軍)을 파(破)하고 명예(名譽)의세계선수권(世界選手權)을 갓게되엿다 금년(今年)의세계선수권전(世界選手權戰)에 잇서서 "핏스빡"의 상대(相對)인 "와싱톤"군(軍)의 진용(陣容)을보건데 선수이십오명중(選手二十五名中) 수팔명(投手八名)(우오(右五),좌삼(左三)) 포수삼명(捕手三名)(우이(右二),좌일(左一)) 일루수일명(一壘手一名)(좌수(左手)) 이루수일명(二壘手一名)(우수(右手)) 삼루수일명(三壘手一名)(좌수(左手)) 유격수이명(遊擊手二名)(좌수일(左手一),우수일(右手一)) 외야수육명(外野手六名)(우수일(右手一),좌수오(左手五)) 내야수보결이명(內野手補缺二名)(우수(右手)) 유치리티일명(一名)(효용선수(効用選手))’이라고 전했다. 이 기사에는 1920년대 사회의 야구 인식이 응축돼, 포지션과 선수 구성 등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본 코너 1633회 ‘북한 야구에선 왜 '유격수(遊擊手)'를 '사이마당지기'라고 말할까’ 참조)
북한에선 내야수를 ‘안마당지기’라고 부른다. 이 말은 집의 중심인 ‘안마당’과 지키는 사람이라는 ‘지기’의 합성어로 집 안의 중심 공간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야가 경기의 중심이고 가장 많은 타구가 몰리는 공간이라는 점을, 생활 세계의 비유로 직관적으로 옮긴 표현이다.
이 단어에는 북한식 언어 정책의 방향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어 ‘인필더’나 한자어 ‘내야’ 대신, 누구나 뜻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고유어를 선택한다. 안마당지기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 없다. 안마당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즉각적으로 그려진다. 스포츠 용어조차 일상의 언어, 생활 감각 속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더 흥미로운 점은 ‘지기’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다. 지기는 단순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선수가 아니다. 맡겨진 공간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존재다. 북한 체육 용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지기, 안마당지기 같은 표현은 개인의 기량보다 역할과 책임을 앞세운다. 수비란 개인의 화려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행위라는 인식이 배어 있다.
안마당지기라는 말은 단순한 체육 용어가 아니다. 스포츠를 어떻게 이해하고, 선수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야구를 통해서도 북한은 자신의 언어관과 사회관을 드러낸다. 내야수를 안마당지기라 부르는 순간, 야구장은 하나의 집이 되고, 경기는 그 집을 지키는 이야기로 변한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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