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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33] 북한 야구에선 왜 '유격수(遊擊手)'를 '사이마당지기'라고 말할까

2025-12-15 08:56

지난 7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리카르도 프라카리 회장이 북한 방문 때 북한 관계자와 인사를 하는 모습[조선중앙통신]
지난 7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리카르도 프라카리 회장이 북한 방문 때 북한 관계자와 인사를 하는 모습[조선중앙통신]
‘유격수(遊擊手)’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넓리 돌아다니며 공격한다는 의미인 ‘유격(遊擊)’과 사람을 뜻하는 ‘손 수(手)’의 결합어이다. 야구에선 2루와 3루 사이를 지키는 선수를 의미한다. 이 말은 영어 ‘shortstop’를 일본 메이지 시대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가 통적인 한자어인 유격이라는 말을 번역어로 사용, 포지션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본 코너 4야구 유격수란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참조)

영어 shortstop’은 짧다는 의미인 형용사 ‘short’와 멈춘다는 의미인 ‘stop’의 합성어이다. 문자 그대로 ‘짧은 거리에서 막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폴 딕슨 야구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원래 영국 크리켓 용어 ‘long stop’에서 차용했다. 미국 야구에선 1858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의하면 조선일보 1926년 1월5일자 ‘스코어로본세계야구선수권대회(世界野球選手權大會)’ 기사는 ‘세계야구선수권(世界野球選手權)이 롯되기는 구(一九)○삼년(三年)으로 년(今年)까지 십이회(二十二回)ㅅ재이다 핏스빡"군(軍)이"내쇼낼리그"를대표(代表)하야 계선수권대회(世界選手權大會)에출장(出塲)하야 뎃로이트"군(軍)을 승삼패(四勝三敗)의 전후격파(接戰後擊破)하야 승(優勝)한 것은 구(一九)○구년(九年)이엇다 후불행(後不幸)히 계선수권대회(世界選手權大會)에 장(出場)할 격(資格)을엇지못하엿다가 륙년(十六年)만에 계선수권대회(世界選手權大會)에 장(出塲)하야 와싱톤"군(軍)을 파(破)하고 명예(名譽)의세계선수권(世界選手權)을 갓게되엿다 금년(今年)의세계선수권전(世界選手權戰)에 잇서서 "핏스빡"의 상대(相對)인 "와싱톤"군(軍)의 진용(陣容)을보건데 선수이십오명중(選手二十五名中) 수팔명(投手八名)(우오(右五),좌삼(左三)) 포수삼명(捕手三名)(우이(右二),좌일(左一)) 일루수일명(一壘手一名)(좌수(左手)) 이루수일명(二壘手一名)(우수(右手)) 삼루수일명(三壘手一名)(좌수(左手)) 유격수이명(遊擊手二名)(좌수일(左手一),우수일(右手一)) 외야수육명(外野手六名)(우수일(右手一),좌수오(左手五)) 내야수보결이명(內野手補缺二名)(우수(右手)) 유치리티일명(一名)(효용선수(効用選手))’이라고 전했다. 이 기사에는 1920년대 사회의 야구 인식이 응축돼, 포지션과 선수 구성 등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북한 야구는 유격수를 ‘사이마당지기’라고 명명한다. 사이마당지기는 말 그대로 안마당 안의 사이 공간을 맡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이 표현은 영어 ‘shortstop’의 본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투수 뒤의 짧은 거리에서 타구를 끊어 세우는(stop) 중간 수비수라는 개념이, 북한식 언어로 옮겨지며 ‘사이’를 맡은 지기가 된 것이다.


북한 체육 용어에서 ‘지기’는 개인의 기교나 스타성을 앞세우기보다, 맡은 구역을 성실히 지키는 역할 윤리를 강조한다. 사이마당지기는 화려한 개인 플레이의 주인공이 아니라, 내야 전체를 이어 붙이고 빈틈을 막는 연결 고리를 뜻한다. 이 명칭은 유격수를 ‘유격대’처럼 기동하는 공격적 존재로 보는 시각과 거리를 둔다.

이 선택에는 이데올로기적 맥락도 스며 있다. 북한은 스포츠를 개인 영웅의 서사가 아니라 집단의 협동과 질서를 드러내는 장으로 본다. 사이마당지기라는 말은 유격수를 팀 수비의 중심축이자 완충 지대로 규정한다. 안마당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틈을 메우는 역할, 그것이 유격수의 본질이라는 선언이다.

결국 사이마당지기는 경기장을 마당으로, 포지션을 책임 구역으로, 선수를 지키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이 한 단어는 북한 야구가 외래 스포츠를 어떻게 자기 언어로 소화하고, 어떤 가치 위에 재구성하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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