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pitcher’ 어원은 영어 동사로 ‘던지다’라는 의미인 ‘pitch’에서 출발했다. 이 동사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이 붙어 문자 그대로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됐다. 19세기 미국 야구 규칙이 정립되면서 ‘pitcher’라는 용어가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underhand(아래손)’ 투구였기에 피칭은 특정한 방식으로 던지는 행위가 강조되었는데, 이후 ‘overhand(오버핸드)’ 투구가 허용되면서 명칭은 그대로 유지됐다.
우리나라 언론은 투수라는 말을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3년 5월7일자 ‘최후결승(最後决勝)의대용전(大勇戰)’ 기사는 ‘우조군(友助軍)의 투수김기봉군(投手金岐鳳君)은 배재교(培材校)의 찬수(撰手)로 우월(優越)한 기량(技倆)를 가진 투수(投手)이며 기외(其外)의 찬수(撰手)도 전부배재학생(全部培材學生)이다’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당시 야구 명문 배재고 경기를 전한 것인데, 투수라는 말이 1910~20년대에 확고하게 정착됐음을 확인하게 한다.
북한에선 투수를 ‘넣는 사람’이라 칭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스포츠 용어 체계와 북한식 언어정책이 결합해 생긴 특징적 표현 방식이다. 먼저 ‘넣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구어적 선택이 아니다. 뿌리는 일제강점기 스포츠 번역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어에서 선수 기용을 가리키는 ‘入れる(이레루)’는 ‘넣는다’로 번역되곤 했다. 해방 이후 한국은 미국식 야구 용어를 중심으로 전문 스포츠 언어를 정비하며 ‘등판’, ‘기용’, ‘교체’ 같은 단어를 자립시켰다. 반면 북한은 초기 스포츠 언어의 일본식 번역투를 상당 부분 유지했고, 이후 이를 자국식 표현으로 재조직했다. 표현은 바뀌었지만 구조는 남은 셈이다.
여기에 북한의 언어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은 해방 이후 한자어 축소, 문장 단순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전문어보다 일상어, 추상적 표현보다 직접적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준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스포츠 현장에서 ‘투입’, ‘기용’, ‘등판’ 같은 복합 개념어 대신 누구나 쓰는 기본 동사 ‘넣다’ 하나로 기능을 통합하는 방식이 정착됐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흥미로운 점은 이 관행이 야구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축구에서 “공격수를 넣었다”, 배구에서 “새 선수를 넣었다”, 육상 계주에서도 “주력 선수를 마지막에 넣었다”는 식으로 선수 배치·교체 전반을 ‘넣다’로 설명한다. ‘넣다’는 북한 스포츠 기사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다목적 제어동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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