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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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21] 북한 축구에선 왜 ‘압박수비’를 ‘달라붙기방어’라고 말할까

2025-12-02 05:28

2024년 한국과 북한의 U-20 여자 아시안컵 준결승전 모습
2024년 한국과 북한의 U-20 여자 아시안컵 준결승전 모습
‘압박수비’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상대편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의미인 ‘압박(壓迫)’과 외부 공격을 막는다는 의미인 ‘수비(守備)’의 합성어이다. 축구에서 상대 선수가 공을 소유하기 전에 또는 소유하자마자 가까이 붙어 공간과 시간을 빼앗아 실수를 유도하는 적극적·전방향 수비 전술.을 뜻한다. 이 말은 영어 ‘pressing’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동사 ‘press’에 ‘-ing’가 붙인 동명사형이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press’ 어원은 ‘누르다, 압력을 가하다’라는 의미인 라틴어 ‘’premere’이며, 고대 프랑스어 ‘presser’와 중세 영어 ‘pressen’을 거쳐 현대 영어로 변형됐다. 이 말은 중세 이후 ‘글자를 종이에 눌러 찍는 압력’이라는 원래 뜻이 확장돼 신문사, 출판·보도 기관이라는 말로 쓰였다. 축구 용어 ‘press’는 ‘상대를 강하게 눌러 움직임을 제한한다’는 라틴어 원형의 의미가 거의 그대로 유지된 형태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 이후 일본 축구의 영향을 받아 이 말을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press’를 ‘프레싱(プレッシング), ’프레스(プレス) 등과 함께 ‘압박(圧迫, あっぱく)이라는 한자어로도 번역했다. 한국은 이 용례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압박 수비’라는 표현이 정착됐다.


북한 축구에선 ‘압박수비’를 ‘달라붙기방어’라고 부른다. 이 말은 붙어서 막는 방어라는 뜻이다. 행동과 기능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북한 스포츠 용어는 단지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바꾼 데 그치지 않고, 행동이나 기능을 직접 묘사하는 단어 구조를 선호한다. 예를 들면 ‘방어수’는 단순히 ‘수비수’의 대체어가 아니라, “공격을 막는 사람 ,방어하는 손(手)”이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벌차기’는 단순히 ‘프리킥’이라고 음역한 것이 아니라, “반칙에 대한 벌차기”라는 규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단순 동작이 아니라 규칙과 제재의 의미가 포함된 이름이다. 이런 언어 방식은 ‘추상된 전술 용어’보다 ‘누구나 아는 일상 동작어 + 기능어’를 선호하는 북한식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 코너 1581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참조)

북한에서 체육은 단지 운동이나 오락이 아니라, 집단 규율과 국가적 가치를 구현하는 장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체육을 “국방과 직결되는 활동”으로 보았고, 군사적 수사(言辭)를 스포츠에 자주 응용했다. 이런 배경에서 ‘방어수’, ‘달라붙기방어’, ‘벌차기’ 같은 명칭은 단순한 기술 명칭이라기보다, 투쟁, 방어, 국방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북한 축구는 단순한 경기 그 이상으로 체제와 집단의 결속, 인민의 규율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그 언어 역시 그러한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따라서 ‘달라붙기방어’라는 표현은 단지 언어 순화의 결과일 뿐 아니라, 북한 스포츠 문화의 이념과 세계관이 반영된 용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본 코너 1551회 ‘북한에선 왜 ‘스포츠’ 대신 ‘체육’이라는 말을 많이 쓸까‘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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