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한화가 무너진 건 단순한 전력 차 때문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 투수 운용의 원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6회초 두 점을 따라붙으며 만든 흐름을 6회말에 그대로 내준 장면은 이 시리즈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1사 2·3루, LG의 좌타자 라인업이 대기하고 있었다. 남은 한화 불펜 중 좌투 황준서 카드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우투 박상원을 올렸다. 플래툰을 무시한 선택이었다.
결과는 2-8. 승부는 거기서 끝났다. 이건 필연이었다. '감'으로 선택한 순간, '책임'도 감독의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은 처음이 아니었다. 비슷한 구조는 이미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한 차례 나왔었다. 한화가 4-0으로 앞서던 경기였다. 황준서가 6회말 흔들리자 한화 벤치는 김서현을 올렸다. 문제는 그 상황 자체가 김서현에게 가장 불리한 조건이었다. 주자 1·3루, 1사, 흐름이 넘어가려는 타이밍. '세이브 상황'도 아니고, '이닝 시작'도 아니었으며, '상대 중심타선'이었다. 즉, 최대 하중 구간에 그대로 던져 넣은 셈이었다. 결과는 모두가 기억한다. 김서현은 좌타 김영웅에게 초대형 동점 스리런을 허용했다. 기세는 한 순간에 넘어갔고, 경기는 뒤집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경기 후 김경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결과론으로 김서현을 죽이면 안 된다." 표면적으로는 선수 보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발언의 방향이다. 그 말의 숨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가 한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틀린 건 그걸 결과만 보고 비판하는 팬들이다." 즉, 판단의 결과는 감독이 만들었는데, 그 결과에 실망한 책임은 팬들이 진다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패착을 만들어놓고 비판을 하는 쪽을 문제 삼아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린 것. 그래서 그 발언은 보호가 아니라 회피였다.
반복되는 실패, 반복되는 책임 회피. 플레이오프에서는 김서현이, 한국시리즈에서는 박상원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들을 위험한 상황에 올린 사람도, 그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사람도 감독과 투수코치다. 불펜은 준비와 매치업 설계의 영역이다. 그걸 맡는 사람은 양상문 코치다. 좌타 라인업 상대에 좌투를 남겨두고 우투를 올리는 순간, 그건 실수가 아니라 운용 방침 부재다. 불펜은 총알이다. 언제 어떤 탄환을 쓰는지가 전쟁을 결정한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탄약 정리를 안 해놓고 전장에 들어간 셈이었다.
문제는 패배가 아니라 태도다. 패배는 야구에서 늘 일어난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패배는 더 큰 패배를 부른다. 감독은 전략을 책임지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실수를 했다면 그 실수의 결과 또한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김경문 감독은 패착을 설명하기보다 팬들의 반응을 문제 삼는다. 그 순간, 팀은 경기만 잃은 것이 아니라 신뢰를 잃는다.
김서현은 결과의 중심에 있었을 뿐, 원인이 아니다. 박상원도 실패했지만, 그 실패는 준비되지 않은 기용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정의 주체는 감독과 코칭스태프다. 선수를 보호하는 척하며 팬들의 비판을 '과격함'으로 포장하는 순간, 지도자는 책임을 진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는 사람이 된다. 한화가 잃은 건 '1패'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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