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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85] 북한에선 왜 ‘스타플레이어’를 ‘높은급 선수’라고 말할까

2025-10-25 07:56

북한 여자 마라톤 정성옥(가운데)은 1999년 세비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 여자 마라톤 정성옥(가운데)은 1999년 세비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 스포츠용어를 처음 들으면 낯설면서도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국제 표준과 너무나 다르고, 남한에서 쓰는 말과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남북한 선수들이 단일팀으로 구성될 때는 남북한에서 쓰는 용어가 달라 혼선이 일어나고, 부작용까지 일어났을 정도이다. 그 이유는 단순한 번역 차이를 넘어, 사상적·언어정책적 배경과 사회주의식 가치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개인주의를 자본주의의 전형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언어 주체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문화어 정책’이라 불리는 이 정책의 핵심은 “외래어나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말을 순우리말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영어 ‘스타플레이어(star player)’를 ‘높은급 선수’라고 말하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타’는 개인 숭배와 명예 중심의 자본주의적 용어로 보고, 이를 사회주의적 집단 가치에 맞는 표현으로 순화한 것이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star’ 어원은 별 또는 밝다는 의미인 인도유럽어 어근 ‘ster-’ 에서 유래했다. 이 어근은 여러 언어에서 ‘별’을 뜻하는 단어로 남아 있다. 영어에서 ‘star’가 ‘유명인’을 뜻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이다.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배우, 가수, 운동선수 등에 비유적으로 사용했다.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발전하면서 ‘movie star(영화배우 스타)’라는 말이 퍼졌다. 이후 ‘star system’(흥행 중심 배우 시스템)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미군정기를 거치며 ‘star’가 외래어 그대로 음차되어 ‘스타’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의하면 조선일보 1925년 1월1일자 ‘야구심판(野球審判) 자격(資格)에대(對)하야’ 기사는 ‘미국(米國)에서 매년 거행(每年擧行)되는 세계선수권쟁패전(世界選手權爭覇戰)에 출장(出塲)하는 심판관(審判官)은 규칙(規則)에 정통(精通)한 것은 물론(勿論)이나 지난 선수생활시대(選手生活時代)에『스타풀레이어』(Starplay□r)로 명성(名聲)이 자자(藉藉)하는 중진(重鎭)이엇든 사람이 만타’고 번했다. 스타플레이어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에선 ‘스타플레이어’, ‘톱스타’, ‘월드스타’라고 말하지만 북한에선 ‘높은급 선수’, ‘우수한 선수’, ‘국가대표급 선수’ 등으로 말한다. 북한의 체육 등급 제도에는 실제로 ‘급(級)’이라는 말이 체계적으로 존재한다. 제1급 선수, 제2급 선수, 공훈선수, 인민체육인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높은급 선수’는 이 중에서도 기량이 높고 공로가 큰 엘리트 선수층을 말한다. ‘높은급 선수’는 단순히 유명세가 아니라, “국가적 체육 기술 수준이 높은, 인민에게 모범을 보이는 선수”를 뜻한다. 이 표현 속에는 사회주의적 ‘능력·공헌 중심’ 평가 기준이 들어 있는 셈이다. (본 코너 1554회 '마라톤 정성옥이 스포츠 선수로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이유는', 1574회 '북한에서 ‘스포츠영웅’이 된다는 것' 참조)

북한 체육보도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을 보면 이 점이 드러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 언론 메채들은 “높은급 선수들의 기술적 수준을 따라배워야 한다”, “높은급 선수들은 청년들에게 혁명적 기백을 심어주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높은급’은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집단적 귀감을 상징하는 말이다. 북한에서 ‘스타’란 개인의 인기보다 “조국을 빛내는 기술과 정신이 높은 사람”을 의미하며, 그 언어 선택 자체가 이념적 메시지인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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