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인민군 출신이었다. 군 체육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4·25체육단으로 발탁됐다. 북한의 체육이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본 코너 1564회 ‘북한에선 왜 ‘국방체육’이라 말할까‘ 참조)
리호준의 귀국은 국가적 행사였다. 김일성 주석은 그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내렸고, 평양 거리에는 ‘주체체육의 승리’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의 금메달은 단순한 스포츠의 쾌거가 아니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자력갱생의 체육정신’, ‘사상무장으로 쏘아올린 금탄’이라 표현하며 체제 선전에 활용했다.
1970~80년대 북한 체육 담론 속에서, 리호준은 ‘주체사격의 시조’ 로 추앙됐다. ‘사상과 정신력으로 세계를 제압한 사격영웅’이라는 선전문구가 붙었다. 특히 ‘주체사격의 길을 개척한 사람’ 이라는 표현은 체육지도자 양성 교재에도 등장했다.
북한에서 ‘주체(主體)’ 라는 말은 단순한 철학 용어가 아니라, 체제의 근본 이념으로 발전한 단어이다. ‘주체(主體)’는 한자 그대로 ‘주인 주(主)’와 ‘몸 체(體)’자를 써서 ‘자신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주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개념은 원래 중국과 일본 철학에서 ‘객체(客體)’ 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근대 일본에서는 ‘주체성(主体性,)’이란 말이 서양의 ‘subjectivity’ 번역어로 널리 쓰였다. 이 말은 인간이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였다. 해방 전후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도 “민족의 주체성 확립”이라는 말이 쓰였다.
북한에서 ‘주체’가 본격적인 정치이념으로 등장한 것은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의 연설 ‘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울 데 대하여’부터였다. 김일성은 연설에서 “사상사업에서 남의 것을 본따는 교조주의를 버리고, 우리 식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혁명의 주인으로서 모든 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1960년대 들어 김정일이 이 개념을 체계화하며‘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도 사람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 중심의 세계관’, ‘수령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 인간상’ 으로 재정의됐던 것이다.
이후 북한은 모든 분야에 ‘주체’를 접두사로 붙이기 시작했다. 주체사상, 주체농법, 주체미학, 주체음악, 주체체육, 주체의학 등으로 쓰였다. 북한이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리호준에게도 ‘주체’라는 말을 붙여 ‘주체사격의 시조’라고 불렀다. 당의 사상적 지도 밑에서 사격에서 조선식 방법으로 발전시켜 세계를 제패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북한에서 ‘주체연호’도 등장했다. 1970년대 이후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주체1(일)년 으로 정한 ‘주체연호’ 가 공식 채택됐다. 이는 주체사상이 단순한 이념을 넘어 시간 질서의 기준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