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제주에 내려와 16일 코스를 점검했다. 이번 대회 코스는 직전 넵스 헤리티지가 열렸던 360도 골프장에 비해 편하게 느껴진다. 제주도 특유의 마운틴 브레이크도 있고 그린도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360도 골프장만큼 치기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이번 대회 컷 기준 타수는 아마도 1언더파 또는 이븐파에서 결정될 것 같다.
연습 라운드를 돌면서 거리 측정기를 사용해 봤는데 나름 만족한다. 거리 측정기를 사용한 건 루키 챔피언십 이후 정규 투어에 와서는 처음이다. 이전에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쟀는데 아무래도 측정기가 있으니 좀 더 편하고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이날은 대회 때 사용할 야디지 북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어쨌거나 지난 대회 때는 아웃오브바운스(OB)를 5개나 범하면서 성적이 좋지 않아 내상을 크게 입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주에는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지난 달 SK텔레콤 오픈 때 호흡을 맞춰 좋은 성적을 냈던 종엽이 형이 이번에 다시 한 번 백을 메주기로 했다.

마음 따뜻한 도시락에서 얻는 힐링
이번 대회의 숙소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형에게 신세 지고 있다. 우선 숙소는 형네 집에서 회원권을 보유한 골프텔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형의 어머님이 서울과 제주를 한 번씩 오가는데 이번 주에는 제주에 머물며 우리를 뒷바라지 해주고 계신다. 특히 새벽에 라운드를 나갈 때는 사랑이 듬뿍 담긴 샌드위치 등을 손수 만들어 챙겨주신다. 시합에 참가하러 제주에 와서 제대로 ‘힐링’을 하고 있는 느낌…. 그래서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고, 성적도 잘 내야 할 것 같다.(하하)
선수들에게 제주도는 조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대부분 제주도지사배 골프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어서다. 나 역시 중학교 2학년 때 참가했었다. 그러나 당시 성적이 좋지 않아 이듬해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이번에 오라 골프장에 온 건 그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 대회를 마친 후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끼리는 모여서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혼날 걱정을 함께 하곤 했다. 다른 시합보다 더 걱정했는데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경비 때문이었다. 제주도는 알다시피 먹고 자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돈을 많이 들여 시합에 보냈으니 부모들은 성적에 더욱 민감해 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도 그 사정을 뻔히 알기에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것이다.

오랜 만의 스크린골프 외출…무명들에겐 ‘오아시스’
앞서 지난 대회 때 컷 탈락을 한 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랜 만에 스크린 골프 대회에 참가했다. 스크린 골프는 내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대회다.
처음 출전했던 게 2013년이다. 투어 프로가 아닐 때라서 시합에 나갈 수 없었기에 일종의 ‘대리 만족’ 차원으로 출전했다. 대회에 나가 상금도 벌고, 내 이름 석 자도 알릴 수 있는 계기였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매일 연습장에서 레슨을 하다 시합에 나가면 마치 휴가를 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지난해에는 상금 랭킹 30위 안에 들어 올 시즌 풀 시드를 획득했다. 하지만 올해는 정규 투어에 뛰느라 좀체 참가할 기회가 없었는데 2주 전 넵스 헤리티지에서 컷 탈락하고 집에 오자 아내가 “집에서 놀면 뭐 하냐. 거기라도 나가보라”고 권해 올해 처음으로 출전했다.
스크린 골프 대회는 정규 투어를 뛰지 못하는 선수나 ‘무명’ 선수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경비도 벌고 자신의 이름도 알릴 수 있어서다.
스크린 골프 대회에서 우승도 했던 공윤식 프로에게는 내가 처음에 스크린 골프 요령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공 프로도 처음에는 스크린 대회에 나가야 될지 말지를 나에게 물어왔다. 난 이런저런 이점이 있으니 한 번 도전해 보라고 권했고, 공 프로는 두 번째 대회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 한국오픈 첫날 깜짝 선두로 나서 돌풍을 일으켰던 전윤철 프로도 스크린 골프 대회에 종종 출전했다. 현재 2부 투어를 뛰고 있는 그도 스크린 골프 대회를 통해 투어 경비 일부를 조달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바이네르 오픈에는 초청 선수로 참가한다. 스크린 골프 대회는 이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선수들에 희망이 되고 있다. 스크린 골프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자세한 얘기를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그만 줄일까 한다.
어쨌건 다음 주 군산CC오픈까지 치르면 상반기 대회도 끝나니 이번 대회에서는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샷을 날릴 예정이다.
정리=김세영 기자(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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