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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사람 '人']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탁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상 프로식 운영을 해왔다”...안재형 한국프로탁구리그 위원장

2022-04-09 07:28

수원 경기대학교 내에는 광교씨름체육관이 있다. 경기대가 체육관 부지를 제공하고 경기도에서 체육관 건물을 지어서 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씨름전용체육관이다. 씨름 시즌이 아닌 요즘 광교씨름체육관은 탁구 전용경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광교씨름체육관 내에는 스튜디오 T라는 한국 최초의 스튜디오형 탁구 전용경기장이 세워져 연일 프로탁구 경기가 열린다. 스튜디오 T는 탁구 경기장이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방송 세트장 같다. 스튜디오 T라는 경기장 명칭부터 남다르다. 영화나 방송을 제작하는 곳도 아닌데 과감히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내걸었고, 탁구의 로마자 표기 앞글자를 따서 스튜디오 T라고 명명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체육관이 갖는 고정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난 이름이다.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면 방송쇼를 보러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국제탁구계에서 선호하는 검은색을 기본으로 꾸몄다. 스튜디어 T 중심에는 ‘꽃가마’라고 이름을 붙인 전용탁구대 1개만이 놓여있다. 전용탁구대는 ‘한국적인 탁구대’를 콘셉트로 삼았다. 한국의 전통가옥을 모티브로 삼아 단청, 창호문, 나무기둥 등을 형상화했다. 특히 하단 창호문으로 새어나오는 은은한 조명으로 한국의 전통미를 한층 살렸다.
탁구대 주위로는 LED펜스, 바닥, 조명, 벤치, 관중석 등이 갖춰져 있고, 곳곳에는 무인중계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일반적인 경기장과는 전혀 달랐다. 스튜디오 T는 체육관을 겸하면서 뉴미디어로 중계하기 위한 ‘제작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체육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기를 무인중계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한다. 프로탁구리그는 픽셀스코프가 제작하는 ‘픽셀캐스트’ 영상을 통해 송출된다. 세계 최초 AI 무인중계로 카메라맨도 PD도 없는 첨단 중계는 지난 1월부터 처음 시작한 한국 프로탁구 경기를 여러 온라인 채널망을 이용해 쉼없이 내보내고 있다.

안재형(57) 한국프로탁구리그(KTTL) 위원장은 프로탁구의 신선한 변화을 이끌고 있는 최고 책임자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자오즈민과의 한중 탁구커플로 유명세를 탔고, 미국 프로골프(PGA)에서 활약하는 안병훈의 아버지로 이름이 알린 그는 프로탁구의 성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프로탁구는 한국탁구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고 있는만큼 부담이 크다. 2022 두나무 한국프로탁구를 시작으로 프로리그를 활성화시켜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와 배구에 이어 5대 프로스포츠로 성공을 시키겠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밝혔다.

한국프로탁구는 새로운 기획과 발상을 갖고 출범했지만 탁구인들과 일부 체육인들을 빼고는 일반적인 관심을 아직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서 관중들의 입장이 제한된데다 일반 방송과 신문 등 언론 등에서 제대로 경기 보도를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위원장은 초대 프로탁구위원장으로써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프로스포츠로서 탁구가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스튜디오 T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채택, 첫 선을 보였으며 메인 스폰서, 마케팅, 홍보 등을 위해 필요하다면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뛰어 다닌다. 8일 스튜디오 T에서 안재형 위원장과 만났다.

안재형 한국프로탁구리그 위원장은 한국탁구의 레전드이다. 올 1월 처음으로 출범한 프로탁구리그 전용경기장인 수원 광교씨름체육관내 스튜디오T에서 만난 그는 "프로탁구 성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지원 기자]
안재형 한국프로탁구리그 위원장은 한국탁구의 레전드이다. 올 1월 처음으로 출범한 프로탁구리그 전용경기장인 수원 광교씨름체육관내 스튜디오T에서 만난 그는 "프로탁구 성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지원 기자]


# 탁구 영웅 유승민을 키운 지도자가 한국프로탁구 총책임자를 맡은 이유

-한국프로탁구리그 위원장을 어떻게 맡게됐나.

“지난 해 대한탁구협회 유승민 회장과 실업탁구연맹 등이 결성한 프로리그준비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프로리그출범을 준비하게됐다. 올 1월 초부터 정식으로 위원장을 맡았다. 유승민 회장 등이 강력히 권유하는 바람에 중책을 맡게 됐다. 탁구의 프로화를 책임지는 일을 맡기 때문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

그는 유승민(40) 대한탁구협회 회장의 스승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리스트인 유승민을 지도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었다. 유 회장이 지난해 10월 후원사를 결정하고 한국프로탁구리그 출범을 공식하고 그를 초대 프로탁구리그 위원장을 맡긴 것은 지도자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로탁구리그를 시작할 때, 성공여부에 대해 걱정을 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하는데.

“주위에서 프로탁구리그가 급하게 출범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프로탁구리그는 유승민 회장의 공약사항 중 하나이다. 지난 해 10월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가 10억원을 내놓고 메인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프로탁구리그가 급진전됐다. 3개월 뒤인 올 1월에 공식 출범했으니 시기적으로 촉박하기는 했다. 하지만 프로탁구 출범은 이미 20여년전부터 탁구계에서는 논의됐다. 많은 의견과 공감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좋은 스폰서를 갖게 돼 공식화 했던 것이다. ”

한국 프로탁구리그는 지난 1월 28일 대한항공과 포스코에너지의 여자부 경기를 시작으로 5월 말까지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기업팀은 ‘코리아리그’(1부)로, 지방자치단체팀은 ‘내셔널리그’(2부)로 2원화돼 운영하고 있다. 코리아리그는 남자 7개, 여자 5개 팀이다. 내셔널리그는 남자 6개, 여자 9개 팀이 참가했다. 한국프로탁구리그는 앞으로 지역연고제와 외국인 선수제도를 도입해 겨울 프로스포츠로 농구, 배구 등과 함께 인기경쟁을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놓았다.

-프로탁구리그 이전 어떤 식으로 대회가 운영됐는가.

“사실 국내 탁구는 전문적인 엘리트 선수들로 사실상 프로식으로 운영됐다. 전국 종별 선수권대회 등 여러 국내 대회에 많은 선수들이 출전했다. 국내 대회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우리 탁구 선수들은 국제경쟁력을 키웠다. 올림픽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빛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국내 환경이 기반이 됐다. 한국프로탁구리그는 그동안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프로라는 이름을 붙여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 프로탁구리그는 탁구 스타 안재형의 스토리 산실

그는 한국탁구의 레전드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탁구 단체전 금메달,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 혼합 복식(양영자와) 동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남자 복식 동메달 등을 땄다. 한국 탁구의 정통 계보를 이으며 한국 탁구의 화려한 궤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스튜디오T 안에 대회를 준비하는 여러 실무진이 사용하는 방들의 이름을 한국 탁구 역사와 관련한 명칭으로 정한 것도 세계 경쟁력을 이어나가고 싶은 그의 의지가 작용했다. 이에리사, 정현숙 등이 중국을 꺾고 첫 세계제패를 이룬 사라예보대회 이름을 딴 사라예보관, 남북한 단일팀이 합작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지바 대회 이름을 빌린 지바관, 유승민이 첫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아테네올림픽 명칭을 사용한 아테네관 등이다. 모두 한국 탁구가 세계 탁구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던 순간을 기리자는 뜻에서 역사적인 대회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기획능력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것 같은데.

“대부분의 업무는 주위 분들과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한번 정해진 것은 그대로 실행하는 스타일이다. 선수로서 쌓은 승부에 대한 집착과 집중력이 업무를 하는데 반영되는 것 같다.”

-선수 경험에서 어떤 것이 도움이 됐는가.

“선수 시절보면 뭔가 다른 부분이 있는 이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세계 최고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정상에 오른 선수들을 살펴보면 천부적인 소질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집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장점을 모으고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한 아들 안병훈과 함께 한 안재형-자오즈민 부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한 아들 안병훈과 함께 한 안재형-자오즈민 부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역사적인 한중 탁구커플과 골프선수 아들


안재형 프로탁구리그 위원장은 1989년, 여자탁구 세계 랭킹 1위였던 중국의 국가대표 자오즈민 씨와 결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선수단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둘 간의 열애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사랑을 급물살을 탔다. 한중수교 이전, 자유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라는 체제의 벽으로 인해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이뤄낸 결혼이었던만큼 최대 화제가 됐다.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당시 결혼식에는 박철언 당시 체육부 장관이 축사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금일봉도 전달하기도 했다.

둘 사이에서 난 아들 안병훈은 벌써 31세의 청년으로 자라 현재 미국프로골프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부모의 빼어난 운동감각을 물려받은 아들은 2016년부터 PGA에 진출한 이후 1부 투어에서 활약하다가 최근에는 2부투어에서 뛰고 있는데 지난 2월 레콤 선코스트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선수인 아들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을텐데.

“그동안 아들 캐디백도 메주고 같이 라운딩도 많이 해봤다. 몇 년 전부터 병훈이가 퍼팅감각이 난조에 빠지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2부 투어로 밀려났다. 티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가는 능력은 1부투어 시절 랭킹 20위권 안에 드는데 퍼팅 능력은 50위 권 밖일 정도로 경기력이 안정감을 보이지 못했다. 작년 초 스윙을 바꿔보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2부투어에서 5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다시 1부 투어로 올라가 활약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는 코로나 팬더믹 영향으로 올랜도에 사는 아들 집을 지난 2년간 가보지 못했다. 2년전 손주를 얻었지만 영상통화로만 만났을 뿐 아직 직접 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운동 선수 선배로서 아들에게 어떻게 조언을 하고 있는가.

“탁구와 골프는 운동 스타일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탁구는 땀흘리며 하는 종목인데 반해 골프는 놀면서 운동을 하는 종목인 것 같다. 골프는 집중도가 높은 운동인만큼 자기 관리가 더 투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지켜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1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중간 아내인 자오즈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지금 체육관인데 오늘 저녁 늦지않게 갈거야. 기다려”라는 말을 던졌다. 체제와 이념을 넘어 이뤄낸 세기적인 커플의 사랑이 아직도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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