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26. 전부를 던진 불굴의 투혼 김득구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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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9-28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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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밝았다. 삶이 그를 괴롭혔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열일곱살에 무작정 상경하여 신문 배달, 중국집 배달원 등 험한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를 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늦은 나이에 천호상고에 입학한 김득구의 꿈은 장사를 크게 해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이 챔피언이 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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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구는 주먹에 대해선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비교적 덩치도 컸지만 누구한테 맞아 본적이 없었다. 밑천 없이 맨주먹 하나만 있어도 되는 세계챔피언은 훌륭해 보이기도 했지만 가능성도 높았다.

‘바로 이거다’고 생각한 김득구는 학생 신분이라 일단 아마추어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세살이 되던 1978년 프로세계에 뛰어 들었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성실한 훈련으로 착실하게 계단을 밟아가던 김득구는 1980년 한국 챔피언, 1982년 동양 챔피언이 되면서 WBA 랭킹 1위에 올랐다.

남은 건 단 하나 최정상밖에 없었다.

랭킹 1위로 도전권을 획득했기에 타이틀전은 기정 사실이었다. 그가 싸워야 할 챔피언은 WBA 라이트급 챔피언 레이 맨시니였다. 프리아스를 1회 KO로 꺾고 타이틀을 차지한 미국 백인의 영웅이었다.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 특설 링. WBA 라이트급 챔피언 맨시니의 15라운드 1차 의무방어전. ‘모형 관’을 가지고 갈만큼 각오가 대단했던 김득구는 맨시니의 빠르고 강한 주먹에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맞으면서도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 기어코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삭제 할 게 전혀 없는 멋진 공방전이었다. 김득구는 라스베이거스 도박꾼들을 비웃듯 9회까지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이대로라면 김의 승리였다.

그러나 10회 들면서 갑자기 김의 페이스가 흔들렸다. 지친 듯 했다. 조금씩 밀리고 있던 맨시니가 돌변하며 공격의 주도권을 잡았다. 11회에는 다리가 풀릴 정도였다.

정신력이었다. 반드시 챔피언이 되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한회, 두회 버텼다.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즈음인 14회. 김득구는 다시 힘을 냈지만 이미 많이 맞은 뒤였다. 몸도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죽을 힘을 짜냈지만 매가 누적된 상태에서 맨시니의 일격이 가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나흘 뒤 김득구는 프로 전적 17승 2패 1무와 유복자, 그리고 심장과 신장을 미국인에게 남기고 힘들었던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국민적 아픔을 준 슬픈 전설의 김득구.

그는 그렇게 갔지만 복싱의 위험성이 다시 사회문제화 되었고 세계권투평의회(WBC)와 세계권투협회(WBA)WBA는 15라운드 경기를 12라운드로 줄였다. 올림픽에서도 헤드기어 착용을 의무화했다.

국내에선 그를 기리는 영화가 두 편 나왔다. 1984년 이계인이 주연한 '울지않는 호랑이'와 2002년 유오성이 연기한 '참피언'이 김득구를 주 소재를 다루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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