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7-1 이승엽의 허허실실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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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3-0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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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7-1 이승엽의 허허실실

상대를 방심하게 한 후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승엽이 뛰었다. 발이 느려 거북이란 별명까지 있는 이승엽이 단독 도루를 하고 있었다.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던 강성우가 놀란 토끼마냥 펄쩍 뛰며 2루에 공을 뿌렸다.
프로 5년간 도루 9개가 전부였지만 이승엽은 그 순간 ‘깜짝 도루’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1999년 10월 14일 대구 구장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2차전 4회말. 0의 행진속에 이승엽이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롯데의 주형광-강성우 배터리는 이승엽의 장타를 철저히 경계하며 몸 쪽을 공략했다.
그러나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3구째가 손에서 빠져나가며 이승엽의 목 뒷 부위를 때렸다.

그 자리에서 쓰러진 이승엽은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뛰어들고 부산을 떤 다음 겨우 일어났지만
1루까지 걸어가서도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여전히 통증이 심한 듯 했다.

몸에 맞는 공을 던진 주형광은 그런 이승엽을 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50홈런 시대(54개)를 열며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이승엽이 공에 맞고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모든 원망이 그에게 돌아 올 터였다.

“던지고 난 뒤 제가 더 놀랐어요” 경기 후 주형광은 그 다음 공을 어떻게 던졌는지 하나도 모를 정도라고 했다.
맞은 이승엽은 그 순간에도 정신을 다잡고 있었고 맞힌 주형광은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사태가 수습되고 다시 인플레이. 이승엽이 1루에 서 있는데도 롯데 배터리는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주형광은 매우 놀란 상태인데다 강타자 스미스를 상대하느라 곁눈질 한 번 하지 않았다.
포수 강성우도 투수와 사인만 나누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래도 쳐다보긴 하는데 아예 무시했다.
원래 도루 능력이 없는데다 몸에 맞는 공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이승엽이 뛸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롯데 배터리는 물론 삼성 코치진까지도.

이승엽은 그 때 허를 찌르는 도루를 생각했다. 1루에 꼼짝 않고 서서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직도 맞은 데가 아픈 시늉을 했다.
그리고 주형광이 공을 던지기 위해 몸을 틀어 올릴 때 2루를 향해 스타트했다.
구장을 가득 메운 수만 관중들의 입에선 ‘아,’ 하는 탄식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이승엽의 느닷없는 도루. 강성우는 바빴다. 잡기엔 늦은 타임이었지만 이승엽이 워낙 느리니 던져는 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악수였다. 수비수는 2루 베이스 커버가 늦었고 강성우가 던진 공은 2루 한참 앞에 떨어졌다.
2루수가 잡기 힘든 원바운드 송구. 공은 뒤로 빠졌고 이승엽은 2루를 지나 3루까지 뛰었다.

“롯데 배터리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회를 노렸죠.
통증이 좀 있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고 뛰기로 마음먹은 다음엔 일부러 더 아픈 시늉을 했죠.”

이승엽을 맞혀 놀란 가슴이 되었던 주형광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루까지 주고 난 후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 한꺼번에 4점을 내주고 말았다.

삼성은 먼저 2연승을 거둬 한국시리즈행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야구는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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