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 다목적홀에서 문화사회연구소 11월 월담(월례발표회)가 열렸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아이돌 성공신화와 아이돌 연습생의 딜레마'를 발표했다.
이 연구원은 우선 아이돌 연습생을 '마이너리티 그룹'으로 규정했다. 수는 많지만 대부분 10대인 만큼 사회적 차별이나 부당한 인권침해 등의 문제에 대해 저항하거나 외부에 고발할 힘이 없는 '약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기획사에 속해 있는 만큼 기획사 관계자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저항하기 쉽지 않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공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부당대우를 무조건적으로 참고 견뎌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주효하게 고려했다.
이 연구원이 아이돌 연습생 6명(작곡가 1명 포함)과 아이돌 산업 전문가 3명을 심층인터뷰한 결과, 아이돌 연습생은 △하루 24시간을 쏟아부어야 경쟁에서 앞설 수 있기에 연습 이외의 것은 시간낭비로 여기고 △부모님과 친구 등 정서적으로 의지하거나 도움말을 구할 존재가 부재했으며 △기획사가 정한 일정(예: 오후 2시~11시)에 맞추기 위해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CCTV·메신저 등을 통해 시시각각 통제당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가족과 친구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며 "대인관계가 굉장히 좁아지고 그만큼 기획사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돌 연습생들이 불확실한 '데뷔 여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굉장히 우울해한다고도 덧붙였다.
계약 당시 기획사가 장담한 것과 달리 아이돌을 준비하는 트레이닝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한 부분도 아이돌 연습생들의 불만사항 중 하나였다. 일정은 쉴 틈 없이 혹독하지만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실망감, 기획사의 일상적인 통제 하에 있다는 부담, 데뷔에 대한 압박 등이 겹치면서, '좋아서 시작한 일'이 '즐겁지 않은 일'로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제가 좋아서 이걸 직업으로 삼고, 어쨌든 직업이 돈 버는 거니까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건데, 요새 들어서는 너무 압박감이 심하다 보니까, 노래할 때 즐겁지가 않아요. 즐거워야 되는데 가끔 가다 '아, 진짜 뭐하고 있지?', '그냥 돈 벌어야 되는 거면 회사나 들어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가. 그러니까 기획사를 들어가기 전에는 안 이랬어요. 아무리 오디션을 떨어져도 '다음이 있어' 이러면서 노래연습실에서 나오지를 않았어요. 서너 시간 노래 부르고, 두세 시간 춤 다 추고, 밥도 거르면서 진짜 그렇게 했었는데, 회사를 갔다 나오니까 이제 회사의 실체를 알았잖아요. 제가 안 좋은 회사를 가서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레슨도 안 받고. 뭔가 어쨌든 저는 회사를 믿고 간 건데 회사는 저한테 해주는 게 없으니까." (아이돌 연습생 B)
이 연구원은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원인으로 한국 문화자본에 균형 있는 유통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점, 그 주변을 감싸는 제도적 환경이 불투명한 점을 들었다. 기획사들이 사생활을 이유로 트레이닝 방법이나 계약관계 등을 공개하지 않기에, 문제 '상황'도 '원인'도 정확하게 진단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원은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경쟁담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상황에만 몰려 건강한 20대를 맞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 것만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학습권과 심리치료상담을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공개된 '아이돌 성공신화와 아이돌 연습생의 딜레마'는 지난해 진행된 서울연구원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획 중 하나로 내년 2월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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