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과학에서 '패배의 기억'은 단순히 감정의 영역이 아니다. 해마와 편도체가 함께 저장한 실패의 감각은 이후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뇌를 경계 모드로 전환시킨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판단의 사령탑인 전전두엽의 작동은 미세하게 둔해진다. 스포츠 신경심리학에서는 이를 '패배 학습의 신경 회로화'라고 부른다. 한 번 크게 진 팀이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 회로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번 대표팀은 그 회로를 다시 썼다.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100-83으로 꺾었을 때 이미 신호가 왔다.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28위 이란에 6연패의 징크스를 77-51로 끊어냈을 때 회로는 본격적으로 재배선됐다. 이현중이 이란전에서 3점슛 7개를 꽂아 넣으며 26점을 올리는 동안 뇌는 이미 '우리는 이런 팀'이라는 새 서사를 입력하고 있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기억 재응고화라 부른다. 오래된 패배의 기억 위에 새로운 성공 경험을 덮어쓰는 것이다. 그리고 결승 버저가 울리는 순간, 그 덮어쓰기는 완성됐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천행건(天行健), 군자이자강불식(君子以自彊不息),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해지기를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강불식(自彊不息), 이번 농구 대표팀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고 시스템을 바꾸고 선수를 재편했다. 화려한 선언 없이, 그리고 개최국 일본의 홈 코트 한가운데서 조용히 준비해온 팀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줬다.
추석 연휴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 연휴는 뇌에게도 특별한 시간이다. 평소 긴장 속에 억눌렸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그러니까 뇌의 공회전 엔진이 비로소 켜지는 때다. 쉬면서도 뇌는 무언가를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지난 일요일 저녁 나고야에서 한국 농구가 조용히 증명한 것처럼 멈추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다시 그 자리에 선다. 이번 추석 연휴, 쉬면서도 조용히 무언가를 갈고 있는 당신에게 그 금메달을 전해드리고 싶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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