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승엽은 고교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설이 돌 만큼 압도적인 재능을 자랑했다. 롯데는 그를 붙잡기 위해 정성을 쏟았고, 입단 후에도 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해주며 주전 1루수 자리를 비워두는 등 파격적인 지지를 보냈다. 팬들 역시 ‘포스트 이대호’, ‘좌타자 버전의 이승엽’이라 부르며 그가 사직의 새로운 심장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나승엽이 대만 현지에서 보여준 모습은 승부사의 투지가 아닌 도박장의 칩을 만지는 무책임함이었다.
흔히 병가상사(兵家常事)라 하여 전쟁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흔한 일이라 하지만, 이번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스프링캠프는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가장 신성한 훈련의 장이다. 동료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시즌을 준비할 때, 팀의 핵심 자원인 그가 불법 도박장에 발을 들였다는 것은 프로 선수로서의 직업윤리와 팀에 대한 예의를 완전히 저버린 행위다. 이는 한 번의 실수로 치부하기엔 그 무게가 너무 무겁고, 천재라는 수식어 뒤에 숨은 오만함이 불러온 비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롯데 팬들은 성적이 부진할 때도 나승엽이라는 미래를 보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그 미래가 도박장의 어둠 속에 파묻혔다는 소식에 사직의 봄은 차디찬 겨울로 되돌아갔다.
재능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지만, 그 재능을 꽃피우는 것은 선수의 인성과 절제력이다. 나승엽은 이번 사건으로 본인의 이름 뒤에 따라붙던 화려한 수식어들을 스스로 지워버렸고, 대신 '문제아'라는 낙인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
이제 나승엽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홈런포나 정교한 타격 기술이 아니다. 뼈를 깎는 참회의 시간과 진심 어린 자숙이다. 징계 수위를 따지기 이전에, 자신이 걷어찬 거인의 유산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야구공 대신 '주사위'를 던졌던 그 손으로 다시 배트를 잡기 위해서는, 팬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처절한 반성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야구 인생은 9회말 2아웃부터라고 하지만, 나승엽은 스스로 자신의 타석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요행이 통하는 도박판에는 없다. 오직 땀방울이 정직하게 보상받는 그라운드 위에서, 죽을힘을 다해 속죄의 스윙을 휘두를 때만 아주 작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나승엽이 이번 추락을 통해 천재의 오만을 버리고 진정한 거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사라질지는 오로지 그의 참회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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