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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999] 왜 ‘라운드(round)’를 ‘회전(回戰)’이라고 말할까

2023-05-27 07:00

한국 남자테니스 간판스타 권순우는 지난 해 윔블던 1회전에서 최강 조코비치를 만나 1-3(3-6 6-3 3-6 4-6)으로 패했다. 사진은 권순우 경기 모습.
한국 남자테니스 간판스타 권순우는 지난 해 윔블던 1회전에서 최강 조코비치를 만나 1-3(3-6 6-3 3-6 4-6)으로 패했다. 사진은 권순우 경기 모습.
예전 라운드(round)를 ‘회전(回戰)’이라고 말했던 적이 많았다. 1990년대까지 신문 스포츠면 기사를 보면 ‘비너스 1회전 통과’ 등으로 ‘회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서 회전은 영어 ‘라운드’를 번역한 말이다. 1회전은 첫 번째로 하는 경기라는 의미이다. 회전은 일본식 한자어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한자어로 확인돼 일제강점기 이후 쓴 말로 추정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서양 문물, 사상이 유입되면서 스포츠 용어도 자국인들이 알기 쉽게 일본식 한자어로 번역해 썼다. 라운드를 ‘돌아올 회(回)’와 ‘싸울 전(戰)’을 써서 ‘회전’이라고 번역한 것은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스포츠에서도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때문인 듯하다. 당시 일본은 시와 군가, ‘수병의 어머니’ 같은 문학 작품을 통해 국민들의 충성심이 살과 뼈에 스미게 했던 것이다. 여기서 스포츠라고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원래 영어 ‘round’에는 전쟁이나 군사적 의미가 전혀 없었으나 일본어를 통해 이런 개념이 스며들었던 것이다.

영어용어사전 등에 따르면 원래 둥글다는 의미인 라운드는 1250년에서 1300년 사이 공식적인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라틴어 ‘Rotundus’를 거쳐 고대 프랑스어 ‘Ront’에서 영어로 변형됐다. 미국 폴딕슨 야구용어사전에 의하면 라운드는 야구에서 이닝을 의미하는 말로 미국 야구 초창기인 1859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 말은 권투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이 사전은 설명한다. (본 코너 775회 ‘왜 ‘라운드(Round)’라고 말할까‘ 참조)

토너먼트 대회에서 몇 회전, 몇 회전할 때 쓰는 말이 'round'이다.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은 각각 quarterfinals, semifinals, finals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것도 round를 붙여 quarterfinal round, semifinal round, final round라고 부를 수도 있다. 또 준준결승을 'round of eight', 16강전을 'round of sixteen'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round는 토너먼트가 아닌 경기에도 사용된다. (본 코너 338회 '왜 토너먼트(Tournament)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20년대 라운드를 원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 1925년 3월14일자 ‘데뷔스컵전(戰) 여러 가지결정(决定)’기사에서 ‘미국정구협회(米國庭球協會)는 유육(紐育)에서 연차총회(年次總會)를 열고 금년(今年)의『데뷔스켑·챠렌지·리운드의경기(競技)의 날스자는 구월십일(九月十日)부터 삼일간비부(三日間費府)『쟈만다운·크리켓트』구락부(俱樂部)의『코트』에서열기로하얏다 또 일월이십오일(一月二十五日)에 발표(發表)한 미국정구(米國庭球)『런킹』중제육위(中第六位)의『왓드손·웟슈빤』선수(選手)는 위원회(委員會)에서 제명(除名)하얏슴으로 제십팔위(第十八位)까지 순위(順位)의 다소 변동(多少變動)이잇다더라’고 전했다. 데이비스컵 챌린지 라운드라는 대회 이름에 라운드라는 말을 쓴 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보도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은 예전 라운드보다 회전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40대 이상의 스포츠팬들이 ‘1회전’, ‘2회전’ 등 회전이라는 말에 더 익숙한 이유이다. 2000년대 이후 회전이라는 말 대신 라운드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1회전, 2회전 등의 표현을 언론에서 쓰고 있다. 사람이 말을 만들지만 역으로 말이 인간 사회와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 'round'를 '회전(回戰)'이라고 일본식 한자어로 번역해 쓰기 때문에 원어에는 없는 전쟁 개념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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