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통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다. 한때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었다. 전주고 1학년때까지 골키퍼로 활약하며 전국체전 고등부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체육 관계 공직을 맡은 것은 체육인 출신으로서의 책임감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16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전국생활체육 배구연합회 회장을 17년간이나 했으며 제34대 대한배구협회장, 제16대 대한축구협회 수석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대한배구협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14, 15, 16,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2002년 노무현 정부, 2017년 문재인 정부 탄생에 일익을 담당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국방위원장, 원내대표 등을 지냈다. 한일의원축구연맹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그의 대한체육회장 출마 선언이 큰 관심을 받는 이유이다.
“대한체육회가 정부와 파열음을 내는 것은 바림직하지 않다. 정부와 대립해서는 안되며, 싸움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체육을 국가 정책의 중심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는 대한체육회가 지난 4년간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 나가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16일 경복궁 서문 가까이 있는 창성동 국민대 총동문회 사무실에서 국민대 총동문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를 만났다.
"체육을 국가 정책의 중심으로 올려놓겠다"
-대한체육회와 정부와의 관계가 왜 중요한가?
“정부와 대립적인 관계를 보이면 지도자,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4천여억원의 예산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전문체육, 생활체육, 학교체육을 두루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부와의 역할 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4년간 대한체육회는 정부와 마찰을 많이 빚어왔다. 체육계 폭력, 성폭력, 인권 문제 등을 야기하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한체육회는 국민 신뢰를 많이 잃어 버렸다. 국민 건강과 행복을 보장하고 스포츠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정부와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이뤄야 한다.”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데.
“스포츠 조직이 건전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적절한 거버너스가 필요하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민의 스포츠권, 건강권, 문화권을 증진하고자 대한체육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게 바람직하다.”
그의 대한체육회장 후보 출마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 상당수가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인 국민의 힘 의원 출신인 이에리사 휴먼스포츠 대표 등도 그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체육을 국가 정책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는데.
“그동안 체육 현장 곳곳에서 대한민국 체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민해온 분들과 많이 만나왔다 . 그들과 연대해 새롭고 건강한 체육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체육이 전 국민의 문제로 국가 정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체육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시절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신설해 인권문제를 크게 해소했던 것처럼 한국 체육을 국가 정책으로 이끌기 위해선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이 국가체육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내에 법과 제도를 갖춰 국가체육위원회를 출범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 일찍이 해방이후 조선체육회 회장, 대한축구협회장, 대한야구협회장 등을 맡은 몽양 여운형 선생님이 ”국민이 건강해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 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몽양 여운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몽양이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A4 용지 크기로 가려버린 사건이었다. 동아일보는 이후 이길용 기자 등이 일장기 말소 기사를 내보냈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몽양은 체육이 민족의 건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며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일제 당국에 의해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됐으며 몽양은 사장에서 해임됐다.
-대한체육회의 혁신과 개혁방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 해방이후 한때 대한민국 중심부에 있었던 체육이 현재 주변부로 밀려난 것은 대한체육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체육, 생활체육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해 전문체육까지 쇠퇴해 가고 있다. 이제는 올림픽에 나갈 선수마저 부족해 선발할 자원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국민 건강도 심각한 위기에 빠져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체육회 개혁방안은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사항과 여러 체육단체들의 여론을 취합해 마련하겠다.”
KOC(대한올림픽위원회) 독립은 한국체육 선진화를 위한 정책적 조치
-KOC 분리문제가 선거의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KOC 분리가 아닌 독립이라고 말해야 한다. KOC 독립은 운동선수들의 인권보호와 신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난 4년간 체육계에 폭력, 성폭력 문제 등이 발생해 선수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운동 선수들의 인권이 무시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이 4년전 회장에 당선하면서 문체부에 회장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은 현재 대한체육회 규정의 모순으로 인해 빚어졌다. 대한체육회와 KOC가 통합 운영되면서 회장 승인을 문체부로부터 받으면 NOC의 독립성 보장을 훼손하기 때문이었다. 정부측에서는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KOC를 독립시켜 ‘각국 NOC의 올림픽 운동에 대한 국가, 자본 또는 그밖의 단체가 행사하려는 명백하게 부당한 압력과 침해를 방지하라’는 IOC 헌장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대한체육회부터 더 이상 편법적으로 운영해서는 안된다.”
-KOC가 독립하면 현재 대한체육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KOC 독립은 선진화된 체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현재 상태로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 그동안의 문제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것을 그냥 방치하면 곤란하다. 그동안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다시 분리시키기 위해서 KOC 독립시키는 거라는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올림픽에 대한 행정 업무는 독립시키고 전문체육, 학교체육, 생활체육은 대한체육회가 전담해서 더욱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KOC는 어떻게 운영하는게 바람직한가?
“KOC 행정파트를 현재 대한체육회에서 떼 놓고 인원을 20명 정도로 하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동안 대한체육회가 KOC 행정을 함께 하면서 엘리트체육, 생활체육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KOC가 독립하면 대한체육회가 좀 더 두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야, 정통 엘리트 체육인”
그는 몸과 마음 모두 체육에 뿌리를 둔 정통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다. 1960-70년대 아시아의 스트라이커 이회택과 함께 공을 찼던 축구선수였다. 1965년 제45회 전국체전 축구 고등부 결승에서 이회택, 박이천, 이종환 등 쟁쟁한 청소년 축구대표선수가 즐비한 최강 동북고와 맞붙었다. 전주고 1학년 때로 그는 골키퍼를 맡았다. 3-0 완패를 해 준우승에 그쳤다.
-축구 선수의 길을 계속 걷지 않은 이유는.
“동북고에 지고 나서 동북고로 전학가려고 했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해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북고에서 남산 팔각정까지 매일 뛰는 아침 훈련을 받던 중 동료 선수들이 시골 출신이라 무시해 대판 싸웠다. 그 길로 축구를 그만뒀다. 경남 함안중 때는 경남 도 대항대회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꽤 이름을 날렸다.”
그는 축구 선수를 그만 둔 뒤 공부를 해 서울대 사회학과에 두 번 떨어지고 뒤늦게 국민대에 진학했다. 대학 입학후 군대 영장을 받고 병으로 입대, 최전방 강원도 철원에서 포병으로 근무하다가 병장 때 월남 파병을 지원했다. 1년여간 맹호 십자성 부대원으로 전투지역인 퀴논에서 근무했다. 월남 파병장병으로 유공자 연금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역 후 복학해 국민대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면서 7년동안 복역했다. 출소한 이후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으며 1992년부터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서 4선의원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맡았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축구협회 수석 부회장을 역임하기도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배구협회장을 맡았다.
- 대한배구협회장을 맡았을 때 얘기를 듣고 싶은데.
“전두환 군사정부 시절 배구협회장은 한전에서 맡아서 오랫동안 지원을 했다. 한전에서 노조측의 반대로 인해 더 이상 배구협회장을 이끌 수 없게 되자 회장 추대위원회에서 나에게 회장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왔었다. 협회장을 맡고 보니 협회가 거의 부도 일보직전이었다. 스포츠용품 납품업체에 1억5천만원 법정 소송까지 걸려 있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형편없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등 여러 기업 대표들을 만나려 직접 발도 뛰어 다니며 재정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
-우석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2018년 우석대 재단으로부터 총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모교가 있는 전주의 대학이라 지역교육 발전을 위해 흔쾌히 수락했다. 오래 전 한양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총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지방 대학의 어려운 환경속에서 나름대로 학교 경쟁력 확보를 위해 1년반이상 열심히 했다.”
그는 지난 8월 지지자 모임을 통해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19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아, 사면 절차 없이는 출마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일 유권해석을 통해 출마에 결격 사유가 없음을 밝히면서 출마의 길이 열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일 '공직선거법 제266조(선거 범죄로 인한 공무담임 등의 제한) 제1항 제3호에 따라 공무담임이 제한되는 임원은 상근임원으로 보아야할 것이므로, 비상근임원인 대한체육회장은 공무담임이 제한되는 직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리고 이틀 후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체육 정책에 뜻을 같이할 수 있는 후보들과는 연대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혀 후보 단일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