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지난 요즘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다시 맞았다. 이번 선거 주요 이슈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문제를 놓고 각 후보들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통합된 형태로 가자는 주장과 분리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정치쟁점화하는 모양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전례가 없이 정치의 한 복판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년 사이에 대한체육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통합과 분리의 숨박꼭지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내년 1월18일 열릴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 달 20일부터 직무정지상태에 들어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65)를 14일 만났다. 그는 선거 이슈가 정치화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심정을 먼저 토로했다.
“대한체육회 역사가 올해 100년이 됐다. 집도 100년이 되면 비도 새고 새로 손봐야할 곳이 생긴다. 잘 만 보수하면 그대로 사용해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가 그동안 뭔가 엄청나게 잘못한 듯이 정치권에서 개혁하고 혁신하자며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특유의 거침없는 답변으로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보였다. 그는 정통 체육인 출신은 아니다. 하지만 엘리트체육계에 오랫동안 몸담으면서 기반을 닦았다. 2000년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 2004년 대한카누연맹회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지냈고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대한수영연맹 회장으로 일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2 런던 올림픽 등에서는 한국 선수단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체육계에서 활동한 경험을 앞세워 스포츠의 정치화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스포츠는 정치가 아니다
-대한체육회장선거에 정치인 출신들이 출마했다. 스포츠에 정치논리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누구라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정치가 개입하는 것은 반대한다. 정치가 전면에 나서면 스포츠의 순수성이 훼손될 수 있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이고 포용적이다.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상대를 존중한다. 서로를 배려하며 최선을 다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다. 하지만 정치가 스포츠로 들어오는 순간 편을 가르며 스포츠 정신과 가치가 혼탁해 질 수 있다. 그래서 정치 개입의 위험성을 경계한다.”
-내년 대한체육회 예산 4천여억원 가운데 96.5.%가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 지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정치 논리과 명분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대한체육회 예산이 마치 그냥 떡 주듯이 정부만이 하는 게 아니다. 문체부에서 예산을 짜고, 기재부에서 예산 협의를 한 뒤 국회 문광위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한 뒤 예결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예산의 대부분은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조성되고 있고, 대한체육회 자체 수익금도 10% 차지한다. 마치 정부나 정치권에서 인심쓰듯 만들어서 주는 돈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치 논리와 명분으로 대한체육회 예산을 언급하는 것은 바림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한체육회 예산은 문체부와 감사원 감사를 철저히 받아 어느 돈 하나 허투루 쓰는 게 없다. 대한체육회가 싫어서 정 돈 주기 싫으면 안주면 된다. 그래도 대한체육회는 돌아갈 수 있다.대한체육회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켜나가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훤회 혁신안에도 동의를 하지 않는 것인가,
“스포츠혁신위원회 안 가운데 인권 개선, 폭력, 성폭력 근절 등에 대해서는 찬성을 한다. 하지만 마치 체육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인 취급하며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본다. 현실을 무시하고 원리주의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는 법이다. 그동안 한국스포츠가 올림픽 등에서 많은 금메달을 획득하며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체육인들의 피와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계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이들도 체육인들이다. 체육인들을 중심으로 나쁜 폐습을 고쳐나가며 민주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마스크를 쓴 채 인터뷰에 응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스포츠의 정치화를 적극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정지원 기자]](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215080928066865e8e9410871751248331.jpg&nmt=19)
KOC 통합은 한국스포츠의 경쟁력
-KOC 분리 논쟁이 뜨겁다.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와 통합된 KOC를 그대로 가자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은 KOC를 분리하자고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왜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하나.
“지금은 KOC가 분리할 때가 아니라 대통합을 해야할 때이다. 4년전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회가 진통 끝에 어렵게 통합했다. 박철언 전 문체부 장관이 정치적인 명분으로 생활체육회를 분리해 오랫동안 둘로 나뉘어 있다가 다시 하나로 결합했다. KOC 통합문제도 그동안 정치권이 개입해 오랫동안 논란을 벌이기도 했으나 한국체육의 경쟁력을 위해선 현재 상태 그대로 가는 것이 맞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이면 제대로 굴러갈 수가 있겠나. KOC는 스포츠라는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분명히 답이 보인다. 하지만 자꾸 정치적인 논리를 앞세워 일부에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분리문제를 꺼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14년 KOC 분리원칙에 정부와 정치권, 대한체육회 등이 합의를 했는데.
“당시 플라자호텔에서 김종 문체부 차관 등의 주도로 KOC 분리를 추후 논의한다고 합의한 것은 맞다. 이것은 사심없이 논의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무조건 분리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KOC가 분리되면 엘리트체육 육성에 비효율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올림픽에 출전할 대표선수는 이미 올림픽 2년전부터 예선전을 치르며 대비해야 한다. 시도 체육회 등에서 육성하는 대표선수를 KOC가 올림픽 출전할 때만 관리한다면 대표선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해 나갈 수 없다.”
-KOC 통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혁을 할 수 있다고 보나
“ 성적지상주의로 인한 기득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빙상계 미투, 고 최숙현 사망사건 등은 스포츠 인권을 경시한 대표적인 폭력 사태이다. 그동안 체육계가 갖고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표면화된 것이었다. 하지만 KOC 분리안을 단지 인권을 이유로 분리하자는 것은 절대적으로 명분이 안된다.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관행을 바꾸려고 노력해야지 근본적인 한국체육 토양을 뒤집어서는 안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간 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처럼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고쳐가면서 새로운 개혁을 이뤄나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내년 도쿄올림픽과 2032년 남북공동올림픽 유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는 아주 힘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점차 한국스포츠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선수들이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 맞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도 어렵다는 설명을 선수촌 관계자들에게 들었다. 예전처럼 나가서 쉽게 금메달을 따는 시대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유망주 발굴이 힘든 시대적인 상황이 체육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체육계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여러 국제종합대회를 유치해놓고 있다. 내년 11월 서울서 열리는 ANOC 총회를 비롯해 2024년 평창 강릉 유스올림픽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런 국제 총회와 대회 등을 발판으로 삼아 세계 각국에 2032 남북공동올림픽 유치 지원과 관심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
체육인은 현명하다
-4년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나와 치열한 경쟁을 한 끝에 당선됐다. 이번에도 여러 후보가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데, 왜 연임에 도전하는가.
“지난 4년간 실무형 회장으로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한다. 체육회 관계자 여러분들이 창의적으로 일 할 수 있도록 배려와 기회를 많이 주었다. 나 자신도 전국을 순회하며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아마도 자동차로 10만 km는 주행하지 않았을까 싶다. 각 정부 부처, 국회, 총리실, 청와대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대한체육회를 좀 더 나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체육인들을 무시하고 행정을 일방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고 화도 나고 울분도 생겼다. 체육인들의 자존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더 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4년 재임 중 성과를 꼽는다면.
“내가 회장이 된 후 대한체육회 예산이 2800억원 정도였다. 내년 예산은 4000억원 정도가 된다. 그만큼 사업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 수십년간 체육인들의 교육을 전담할 교육센터가 없었는데, 장흥교육센터를 건립해 11만여 체육인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장흥교육센터에서 직무, 인성, 소양 교육 등 체계적인 교육을 할 예정이다. 체육인 일자리도 많이 만들었다. 시군구에 180명, 상임심판 125명, 생활체육 지도자 300명 등에게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마련했다. 평창에는 동계 전용 훈련 시설을 건립해 동계종목 활성화를 이끌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나.
“어떠한 선거든 낙관을 할 수 없다. 쉽게 이기는 선거는 없다. 체육인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 체육인들의 결정을 존중하며 따를 것이다. ”
현재 대한체육회장 선거에는 재선에 도전하는 이기흥 회장에 맞서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 장영달 전 대한배구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스포츠과학대학 국제스포츠학부 교수, 윤강로 국제스포츠연구원 원장 등이 출마를 선언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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