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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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아웃 &인] EPL, 돈보다 신뢰가 먼저다

2020-04-06 06:41

프리미어리그가 코로나19로 중단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선수 임금삭감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리미어리그가 코로나19로 중단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선수 임금삭감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폭풍우가 몰려왔다. 그동안 잦았던 비바람과는 그 강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동안 곳간에 쟁겨놓았던 자금을 일순간에 쓸어버릴 기세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에 모두가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고가는 프리미어리그(EPL)의 요즘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여파로 프리미어리그가 좀처럼 재개된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돈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상 처음으로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지 2개월여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돈싸움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축구팬들은 박진감 넘치 경기 대신 추악한 돈싸움을 지켜봐야 할 판이다.

그동안 프리미어리그에는 돈이 넘쳐났다. 1조가 넘는 갑부 구단주에 의해 운영될 정도로 자금 유입이 많고 구단간에 가장 많은 돈이 오고 갔다. 사상 최고 규모의 돈이 방송 계약, 스폰서 계약 등을 거쳐 리그와 클럽, 선수와 에이전트의 손으로 넘어갔다. 프리미어리그의 모든 이들이 살을 잔뜩 찌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본격적인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기에 고통을 분담하자는 축구계의 움직임은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영국 밖에서 먼저 나왔다. 유럽 5대 리그 중 처음으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리그를 중단한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는 지난 달 말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과 연봉 문제에 합의, 4개월동안 1억유로(1천3백34억원)을 삭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스페인 라리가의 바르셀로나도 리그가 재개될 때까지 70% 임금 삭감에 동의했다고 주장 리오넬 메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혔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선 아직까지 선수들의 임금인하나 동결을 발표한 구단은 없다. 뉴캐슬 등 일부 구단에서 직원들을 무급휴직 등으로 일시 해고했다는 발표뿐이었다. 천문학적인 임금을 받는 선수들이 많은 프리미어리그는 현재 리그, 구단주, 선수 등이 돈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하고 있다.

EPL 사무국은 수일전 “선수들과 연간 총 보수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조건부 삭감 혹은 지급 연기하는 방안 등을 구단간에 논의할 예정”이라며 “결정은 단독으로 하지 않고 전체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고 밝혔다. 이에 선수들을 대변하는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는 5일 “임금이 줄어들면 선수들이 세금을 덜 내게된다. 이는 국민보건서비스(NHS) 등의 재정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며 선수들에게만 임금 삭감을 요구하는 EPL 사무국측의 계획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축구계의 임금삭감 공방전은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됐다. 맷 핸콕 영국보건부 장관은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 축구선수들의 주급 삭감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으면 한다”며 임금삭감을 강요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웨인 루니(더비 카운티)는 “왜 축구선수의 임금 문제를 보건부 장관이 나서서 하는가”라며 “선수들을 희생양으로 모는 것은 안된다. 프리미어리그 선수간에도 많은 임금차이가 있다. 모두 일률적인 삭감을 주장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리그인 EPL에서 선수들보다 구단측과 정치권 등에서 먼저 선수들의 임금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바르셀로나 등과 같이 선수들과 협의를 통해 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EPL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EPL 갈등의 뿌리에는 돈 문제 이전에 불신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맨체스터에 살며 오랫동안 EPL를 취재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니 스미스는 5일 자신의 칼럼에서 “문제는 돈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서로간 신뢰가 부족하다. 선수와 구단, 구단과 구단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고 따로 따로 논다.. 정상적인 때에도 서로를 의심하는데 비상시기에 더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축구팬들은 당분간 리그 재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돈많은 부자들이 돈 싸움을 벌이는 EPL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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