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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리우] 쑨양-호튼의 신경전, 남의 집 싸움 구경이 왜 씁쓸하지

2016-08-10 17:28

▲중국네티즌이SNS로호튼을공격하는글.사진=트위터캡처.
▲중국네티즌이SNS로호튼을공격하는글.사진=트위터캡처.
[마니아리포트 이은경 기자] 2016 리우올림픽 수영 스타 쑨양(중국)과 맥 호튼(호주)을 둘러싼 신경전과 잡음이 점입가경이다.

발단은 리우올림픽 개막 직전 훈련 중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쑨양이 경쟁자인 호튼을 향해 거칠게 물을 끼얹었다는 내용이 호주 언론에 보도됐다. 이 기사에는 쑨양이 과거 혈관확장제 성분이 있는 약을 복용했다가 도핑으로 징계를 받았고, 무면허 운전 전력도 있으며, 여자친구를 만나느라 훈련장을 이탈하는 등 말썽을 부렸다는 전력이 상세하게 소개됐다.

문제는 대회 중에 또 불거졌다. 호튼이 공식인터뷰 도중 “쑨양은 도핑으로 우릴 속였던 선수”라고 공격했다. 호튼이 사용한 ‘cheat’라는 단어는 ‘속였다’는 뜻에서 더 나아가 ‘사기꾼’이라는 뉘앙스까지 들어있다.

이때부터 더 이상 선수끼리의 감정 싸움이 아니었다. 중국과 호주 네티즌들은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섰고, 중국이 공식적으로 호주 선수단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어쨌거나 경기장에선 두 선수 모두 성적이 좋았다. 호튼은 이번 대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쑨양은 남자 자유형 200m에서 우승했다.

감정싸움, 어느 정도기에

중국과 호주팬들의 SNS 글을 보면 살벌한 수준이다. 중국 팬들은 호튼의 얼굴을 찌그러트린 사진에 ‘X 같은 선수’, ‘뱀 같은 놈’이라는 막말을 퍼붓고 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쑨양의 치열이 고르지 못한 것을 꼬투리 잡아서 “쑨양이 금메달을 따서 다행이다. 그걸 팔아서 교정할 수 있게 됐으니” 같은 독설이 쏟아진다. 호주의 한 뉴스진행자는 호튼이 쑨양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는 뉴스를 전하다가 “사기꾼 중 하나인 쑨양이…”라고 말실수를 저질러 이후 사과하기도 했다.

▲한호주인이쑨양의치열을비웃는트윗을올렸다.사진=트위터캡처.
▲한호주인이쑨양의치열을비웃는트윗을올렸다.사진=트위터캡처.

호주-중국 수영의 구원(舊怨)

수영에서 호주와 중국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기 시작한 건 중국 수영이 국제무대에서 막 도약하기 시작한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린(중국)이 2008년 초 호주의 데니스 코터렐 코치를 영입하면서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은메달을 따냈다. 코터렐은 호주의 장거리 스타 그랜트 해킷의 스승이다. 쑨양 역시 코터렐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중국 여자 수영 선수들도 호주 코치의 전담 지도를 받기 시작한 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호주는 수영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이언 소프 등 수영 스타들도 많고 수영의 인기도 높다. 마이클 펠프스(미국)가 2008년 쓴 자서전을 보면 “호주에 가 봤더니 스포츠뉴스 첫 기사가 수영 소식이다. 수영의 인기가 높아서 부럽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다.

호주 수영은 미국과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이뤘는데,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부터 중국 수영이 약진하면서 균형이 깨졌다. 호주 수영의 위상이 위축됐다. 호주 언론 보도에서 알게 모르게 중국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들을 ‘배신자’ 취급하는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8년 호주의 수영 코치 켄 우드가 자신이 지도하던 호주 여자 접영 대표 제시카 시퍼의 비밀 훈련법 노트를 중국에 팔아 넘겼다는 스캔들이 터졌다. 중국 수영을 바라보는 호주의 여론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악화됐다. 호튼과 호주 네티즌들이 쑨양에 대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다.

도핑, 중국에 대한 의심의 시선

2012 런던올림픽 여자 수영 개인혼영 400m에서 중국의 16세 소녀 예스원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예스원의 구간 기록을 보면 마지막 50m 구간기록이 같은 종목의 남자 우승자 라이언 록티(미국)보다 빨랐다는 점은 화제를 넘어서 논란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켰다.

서구 언론들은 예스원의 기록에 대해 ‘약물의 힘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예스원 뿐만아니라 전반적으로 중국 여자 수영이 놀라운 기세로 약진한 것에 대해 약물복용을 의심하는 시선도 많았다. 1990년대 돌풍을 일으켰던 중국 여자 육상 장거리 선수들이 훗날 도핑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던 사실도 이런 의심을 부풀리는 데 한몫 했다.

중국 수영 선수들에 대한 도핑 의심이 이어지는 와중에 2014년 쑨양이 도핑 양성반응을 보였다. 쑨양은 이 사건 이후 코터렐 코치와도 결별했다.

▲리우올림픽개막전쑨양과박태환이함께찍은셀카.사진=중국CCTV웨이보.
▲리우올림픽개막전쑨양과박태환이함께찍은셀카.사진=중국CCTV웨이보.
아시아 수영의 자존심에는 상처

수영은 전통적으로 백인들의 종목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시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던 건 2004 아테네올림픽 평영 2관왕에 올랐던 기타지마 고스케(일본) 정도였다. 그나마 평영은 아시아 선수도 기술을 앞세워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박태환과 쑨양은 세계 수영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넘지 못할 벽이라고 여겼던 남자 자유형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둘 모두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우승한 이후에 도핑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감수해야 했다. 물론, 이들이 발표한 약물복용 이유는 ‘몰라서’ 혹은 ‘질병 치료를 위해서’였다.

호튼은 쑨양의 도핑 전력에 대해 공격하면서 박태환의 이름을 함께 거론했다. 또한 호튼과 쑨양의 신경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가운데 프랑스의 수영 선수 카미유 라코르까지 나서서 비난 인터뷰를 했다. 라코르는 쑨양이 우승한 남자 자유형 200m를 가리켜 “시상식을 보면서 역겨웠다. 수영은 이제 시상대에 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선수가 2~3명씩 있는 종목으로 변질됐다”고 독설을 날렸다.

서양 수영 선수들이 마치 텃세라도 부리듯 아시아 선수들에게 가시 돋친 독설을 내뱉는 것을 지켜보는 게 과히 즐겁지는 않다.

서양 선수들은 박태환, 쑨양 같은 아시아의 수영 선수들이 자유형에서 당당하게 서양의 거구들을 제치고 우승했을 때 아시아인들이 함께 느꼈던 짜릿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약물 복용 사실로 아시아의 챔피언들을 공격하면 딱히 반박할 수 없다는 게 더욱 씁쓸하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리우올림픽에서 벌어지고 있는 쑨양과 호튼의 신경전을 바라보는 게 더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이은경 기자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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