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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창립 13人의 인생스토리]②서부 개척시대와 여성 골프

2016-03-24 12:08

▲LPGA투어의홍보를위해남다른노력을했던마릴린스미스.
▲LPGA투어의홍보를위해남다른노력을했던마릴린스미스.
[피닉스=마니아리포트 김세영 기자]미국은 서부 개척시대를 통해 영토를 넓히고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서부의 끝 캘리포니아에서 바다를 마주하자 다시 하와이로 향했고, 이어 태평양,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에 이르게 됐다. 황량하고 거친 서부를 개척한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이란 없었을 것이다.

1950년 13명의 개척자들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를 결성했을 당시 그 규모나 재정은 초라했다. 그들은 갤러리들을 코스로 끌어 모아 대회를 흥행시키고 이를 통해 스폰서를 유치해야 했다. 이를 위해 13명의 골프 개척자들은 LPGA 투어를 알리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고, 이 과정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 2000년 월드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마릴린 스미스(1929~)의 일화가 유명하다. 캔자스의 대초원에서 자란 그녀는 종종 메이저리그 야구장의 홈플레이트에서 골프 샷을 날리며 LPGA 투어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앞장섰다. 한 번은 복싱 경기장을 찾아 홍보를 하던 중 피 튀기는 경기를 보다 졸도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동료가 피가 흥건한 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스미스는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간 LPGA 투어 회장을 역임했다. LPGA 투어 친선 대사로 일하면서 화려한 옷과 힐을 신고 팬과 스폰서, 그리고 미디어 앞에 섰다. 그는 티칭에도 관심이 많았다. 1949년부터 그가 가르친 골퍼의 수를 합하면 무려 2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미스는 또한 TV에 출연한 최초의 여성 골프 해설가이기도 하다. 1973년 US오픈 때 중계를 맡았다. 여자 골프의 발전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1954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76년까지 투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메이저 2승(타이틀홀더스 챔피언십.1963~1964년)을 포함해 통산 21승을 거뒀다. 1985년까지도 종종 대회에 출전하는 애정을 보였다.

지난주 파운더스컵 당시에도 그녀는 골프장을 찾아 후배들의 플레이를 직접 관전하며 응원했다. 고령으로 잘 걷지 못해 카트에 탄 그녀는 3라운드 때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리디아 고는 당시 “창립자인 스미스 할머니가 내 경기를 지켜봐 주셔서 정말 영광이었다”고 했다.

▲트릭샷아티스트로불렸던셜리스포크.
▲트릭샷아티스트로불렸던셜리스포크.


아직 생존해 있는 창립자 셜리 스포크(1927~)도 그녀가 가진 남다른 재주로 LPGA 투어를 홍보했다. 바로 트릭샷이다. 다양한 기술 샷을 잘 구사해 ‘트릭샷 아티스트’로 불렸던 스포크는 팬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쇼를 보여줬다.

이스트 미시건 대학 출신으로 1947년 내셔널 대학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스포크는 자신이 프로로 전향한 일화를 자주 언급하곤 한다.

“어느 날 베이브 자하리아스가 내가 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애야, 프로로 전향하는 게 어때? 우린 선수가 필요하거든.’ 내가 그래서 프로로 전향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지. 그러자 그녀가 내 머리를 뚝 때리면서 ‘저기로 가서, 그들에게 네가 프로라고 말해, 그러면 너는 프로가 되는 거야.’ 하하.”

스포크는 골프 티칭에서도 뛰어난 재능이 보였고, 그가 명성을 쌓자 커스텀 클럽 메이커인 골프크래프트는 그녀를 회사 고문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스포크는 RV 자동차를 타고 낚시나 여행을 즐기는 걸 좋아했고, 두 번의 무릎 인공관절 수술과 두 번의 고관절 수술을 받고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9홀 라운드를 돌 정도로 골프에 애정이 깊었다. 스포크 역시 이번 파운더스컵 대회장을 방문해 선수와 자원봉사자 등을 격려했다.

▲루이스서그스는여자선수최초로커리어그랜드슬램을달성했다.그녀의아버지는초창기LPGA투어대회에상금을대기도했고,그녀는"내돈을되찾기위해열심히쳐야한다"고농담하기도했다.
▲루이스서그스는여자선수최초로커리어그랜드슬램을달성했다.그녀의아버지는초창기LPGA투어대회에상금을대기도했고,그녀는"내돈을되찾기위해열심히쳐야한다"고농담하기도했다.


LPGA 투어는 초창기 재정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인 루이스 서그스(1923~2015)의 아버지는 종종 대회 상금을 내놓는 등 금전적인 뒷받침을 했다. 서그스의 아버지는 당시 애틀랜타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서그스는 이런 이유로 “내 돈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쳐서 우승해야 한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10세 때 골프를 시작한 서그스는 1957년 여자 선수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그녀는 메이저대회 11승을 포함해 통산 61승을 올리는 등 베이브 자하리아스와 함께 가장 유명한 창립 멤버로 꼽힌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LPGA 회장을 역임했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과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는 지난해 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3명의 창립자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서부를 개척하며 미국의 풍요를 이끌었듯 척박한 토양 위에 ‘LPGA’라는 씨앗을 뿌리고 열정으로 길렀다. 그 혜택을 미국에 진출한 한국 여자 골퍼들을 포함해 전 세계의 여성 골퍼들이 누리고 있다.

피닉스=김세영 기자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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